ADVERTISEMENT

미국서 본 녹여먹는 구강청결제 … 이거다 싶어 약에 응용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구강용해필름 전문 장석훈 씨엘팜 사장

장석훈 씨엘팜 사장이 21일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구강용해필름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발기부전치매 치료제 등 18종류 제품을 생산 중이다. [최정동 기자]

장석훈 씨엘팜 사장이 21일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구강용해필름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발기부전치매 치료제 등 18종류 제품을 생산 중이다. [최정동 기자]

세계보건학회는 알약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사람이 10년 안에 세계 인구의 2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유아뿐만 아니라 어른도 복용의 어려움 등으로 알약을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혀에 살짝 대면 녹는 필름 형태의 약은 어떨까. 물 없이 침만으로도 입 안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복용하기 편할 뿐 아니라 약효도 빠르게 나타난다. 구강용해필름(ODF) 전문 기업 씨엘팜의 장석훈(64) 사장은 이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21일 서울 성동구 씨엘팜 본사에서 만난 그는 “현재 세계 필름형 약품 시장의 규모는 5조원 정도(국내 300억~500억원)로 전체 제약시장(1000조원)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거의 모든 약을 필름형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알약 못 삼키는 사람들에 편리 #발기부전·치매약 등 18종 납품 #특허 13개, 몽골·멕시코에도 수출 #내년 매출 목표 300억원으로 늘려

씨엘팜은 현재 발기부전·치매·인후염 치료제 등 18종류의 제품을 종근당·유한양행·대웅제약을 비롯한 13개 제약사에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몽골·카자흐스탄·멕시코의 제약사에도 납품하고 있다. 구강용해필름 제조사는 씨엘팜을 포함해 국내에 4개, 해외에 15개 정도 있다. 씨엘팜의 강점은 경쟁사와 전혀 다른 제조 공법에 있다. 국내외 경쟁사는 모두 약물을 바른 후 필름을 자르는 롤 방식을 쓰고 있다. 이와 달리 씨엘팜은 10년 넘는 연구 끝에 한 장씩 자른 필름에 약물을 하나씩 분사하는 캐스팅 방식을 개발했다.

필름형 의약품 제조설비에 대한 특허 13개를 국내외에 등록했다. 씨엘팜은 현재 중국·일본·브라질·말레이시아·미국의 제약사와 합자회사를 세워 현지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협상 과정에서 씨엘팜의 무기는 기술력이다. 대개 합자회사를 세울 때 서로 일정 비율로 자본금을 내지만 씨엘팜은 돈 대신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특허 받은 기계는 돈을 받고 파는 조건도 붙인다. 장 사장은 “수십억원에 이르는 기계까지 팔 수 있기 때문에 이르면 내년부터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로 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내년 매출 목표를 올해의 두 배 수준인 300억원으로 잡은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매출을 늘릴 카드가 여럿 있다. 장 사장은 “올 가을 홈쇼핑에 필름형 홍삼 제품을, 편의점에 필름형 숙취 해소제를 내놓고 내년에는 동물용 필름 의약품 시장에도 진출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필름형 제품에 도전하고 있는 장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의류 무역업에 뛰어든 그는 1년에 54개국을 누빌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그러다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198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사업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도 의류 무역업을 이어가던 그는 2000년에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1년에 3개월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상에 심신이 지쳐서다. 몇 달을 쉬던 그는 후배 소개로 주름 개선 전문 화장품 회사를 인수해 1년에 1000만 달러 넘게 벌기도 했다. 화장품 사업에서도 성공하나 싶었는데 사달이 났다. 신문 광고 문구로 ‘바르는 보톡스 미라보텍스’라고 썼는데 보톡스로 유명한 앨러간에서 소송을 냈다.

새옹지마랄까 소송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고용한 변호사가 필름형 구강청결제를 먹는 모습을 봤다. 장 사장은 소송 통에 정신이 없을 때였는데도 ‘아, 저거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곧바로 앨러간의 오너를 찾아가 합의했다.

2003년부터 3년간 17명의 연구진과 필름 원천 기술 개발에 매달린 그는 2006년 귀국해 씨엘팜을 창업했다. “규제는 많고 자본은 조달하기 어려운 한국에 왜 왔느냐고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 보면 묘한 애국심 같은 게 생깁니다. 내년에 상장하고 수출과 해외 진출도 더욱 늘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습니다.”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