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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파트 화재 참사로 고층아파트 긴급 점검…주민 4000명 대피

중앙일보

입력

최소 79명이 숨진 런던 24층 임대아파트 화재 여파로 영국 정부가 고층 아파트 긴급 점검에 나선 결과 화재 우려가 있는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건물이 다수 적발됐다. 일부에선 긴급 보수를 위해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가연성 외장재 사용한 아파트 34곳 긴급 조사서 '불합격' #영국 전역서 고층아파트 적발, 외장재 제거 작업 나서 #경찰 "참사는 냉장고 발화로 시작, 외장 단열재가 불쏘시개"

 영국 정부가 17개 지역의 고층 아파트를 대상으로 긴급 안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상당수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지역사회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긴급 안전 테스트에서 지금까지 34개 아파트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화재 참사가 발생한 그렌펠 타워는 외부 패널에 불에 잘 타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를 충전재로 부착한 제품을 리모델링 때 외장재로 사용했다. 폴리에틸렌 충전재는 단열엔 좋지만 불이 붙으면 빠르게 타면서 독성 가스를 내뿜는다. 이번 화재 때 저층에서 난 불이 순식간에 고층까지 옮겨붙은 원인으로 이 외장재가 지목되고 있다. 런던 경찰은 “그렌펠 타워에서 수거된 단열재는 테스트를 시작하자마자 불에 타버렸고, 외부 패널도 화재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런던 챌코츠 아파트 단지의 가연성 외장재. 외벽 패널 안에 단열재가 들어가 있다. 최소 79명이 숨진 그렌펠 타워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 단열재를 사용했는데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EPA=연합뉴스

런던 챌코츠 아파트 단지의 가연성 외장재. 외벽 패널 안에 단열재가 들어가 있다. 최소 79명이 숨진 그렌펠 타워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 단열재를 사용했는데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EPA=연합뉴스

 영국 정부는 그렌펠 타워와 비슷한 외장재를 사용한 고층 아파트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화재에 안전하지 않은 고층 아파트의 이름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소재지는 런던뿐 아니라 맨체스터·플리머스·포츠머스·버넷·브렌트 등 다양했다.

 일부 고층 아파트에선 주민 대피령까지 내려졌다. 런던의 캠든 구청은 23일 화재 위험이 있는 외장재가 쓰인 챌코츠 이스테이트 아파트 4곳 700여 가구 주민 4000여 명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들은 여행가방 등에 간단한 짐만 챙겨 아파트를 빠져나온 뒤 친척집 또는 구청 측이 마련한 인근 체육관과 호텔 등 임시 숙소로 옮겼다. 구청 측은 아파트 외장재를 제거하는 긴급 개보수에 나설 방침이다.

화재가 난 그렌펠 타워와 유사한 외장재가 쓰인 영국 런던 캠든 지역 첼코츠 아파트 단지. 이곳 주민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EPA=연합뉴스

화재가 난 그렌펠 타워와 유사한 외장재가 쓰인 영국 런던 캠든 지역 첼코츠 아파트 단지. 이곳 주민들에게는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EPA=연합뉴스

 일부 주민들은 구청 측이 과잉 대응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지아 굴드 캠든 구청장은 “주민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알지만 그렌펠 타워 참사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금은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BBC에 말했다. 대피를 거부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해 굴드 구청장은 “아직 83명이 대피를 거부한 채 남아있는데, 끝까지 거부하면 법적인 여러 대응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층 아파트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면서 화재 위험이 있는 고층 아파트에 대한 개보수 작업과 대피령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그렌펠 타워 화재가 핫포인트사의 냉장고에서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핫포인트는 월플이 소유한 가전회사다. 런던경찰청 피오나 맥코맥 경정은 “화재와 관련된 기관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있으며 과실 치사를 포함한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며 “화재는 오래된 핫포인트사 냉장고에서 시작해 건물 외장재로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과 화재 예방 등의 관점에서 이 빌딩과 관련된 업체들을 모두 수사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그렌펠에 사용된 외장재는 절대 안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란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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