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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20년 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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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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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시티 하스마 전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이 보낸 편지. 그녀가 보내준 따뜻한 마음을 줄곧 간직하고 있다.

20년 전 시티 하스마 전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이 보낸 편지. 그녀가 보내준 따뜻한 마음을 줄곧 간직하고 있다.

지금 말레이시아는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다. 라마단이 끝나는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최대 명절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슬람력은 통상 태양력보다 10일 이상 짧기 때문에 반드시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매년 조금씩 앞당겨지고, 1년에 두 번 맞이할 때도 있다. 내가 결혼하면서 홍콩에서 말레이시아로 온 지 올해로 36년이 됐기 때문에 최소 36번 이상의 하리 라야를 가족들과 함께 축하한 셈이다. 한 달 동안 금식을 하지만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해가 뜨기 전에 배를 채워 놓고, 해가 진 후 저녁 기도가 끝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그사이에 부지런히 먹어 둘 필요가 있다.

올해는 좀 더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우리 회사 식음료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한부모 가정 80명을 초청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을 대표해 무대에 선 나는 36년 만에 처음으로 말레이시아어로 5분간의 연설을 했다. 비록 긴장해서 떨리긴 했지만 이틀간의 연습은 헛되지 않은 듯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함께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운권 추첨을 통해 선물을 받은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행사가 끝나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축하 인사 ‘타니아(Taniah)’를 건넸다. 어린 아이들은 내 품에 쏘옥 안기기도 했다. 어찌나 귀엽던지!

집에 돌아오니 큰 딸이 촬영한 영상을 내게 보여 줬다. 내가 적잖은 노력을 쏟아부은 것을 알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실은 요 몇 년간 말레이시아어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마음을 먹은 터였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모두 영어 혹은 중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역시 쉽진 않았다. 내가 말레이시아어로 말문을 열면 모두 ‘채널’을 변경해 자동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족한 말레이시아어 실력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20년 전 일이다. 20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냐고? 기억하다 못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침 일찍부터 총리실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당시 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의 부인 시티 하스마 여사가 각 정부 부문 대표와 기업가 등을 초청했다. 말레이시아 독립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넘쳐 흘렀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땐 마흔이었으니 얼마나 쌩쌩했겠는가.

하스마 여사는 내가 홍콩에서 온 걸 알고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 문제는 그녀가 말레이시아어로 말을 걸어온 것이다. 아마 내가 노래하는 것만 듣고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어찌 알겠나. 내가 노래만 할 줄 알지 질문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위급 상황을 맞은 나는 영어로 망언을 지껄였다.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48층 고층빌딩이어서 엘리베이터가 너무 빠르다, 아직 적응이 안됐는지 귀가 좀 불편하다, 아마 청력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등등. 뭐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최근에 이사를 한 것도 사실이고, 귀가 좀 불편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안들리는 것’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인데. 말을 할수록 꼬였지만 모두 내 잘못이니 어쩌겠나. 다행히 누군가 다가오는 바람에 우리의 대화는 중단됐고, 덕분에 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 일로 며칠 동안 괴로워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하스마 여사가 48층에 있는 우리집을 방문한 것이다. 이번엔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만남이었고, 의사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그녀와 보낸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그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나는 더 큰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 말레이시아 노래가 아닌 내가 작곡한 ‘우연’을 택해 들려줬다. 우리는 영어로 가족과 자선활동에 대해 이야기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 없었다.

어느새 작별을 고할 시간이 와서 나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배웅을 나갔다. 그녀는 매우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적응이 좀 되셨어요? 이명은 좀 좋아졌는지요.” 순간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유구무언이다. 이 일은 내게 큰 교훈을 남겼다.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망언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야 위기상황이 다시 닥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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