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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 없애고 판사 독립? 좋은 재판 하는 길인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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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일의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서경환 서울고법 민사합의26부 부장판사는 “일선 판사들이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공평한 재판을 바라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19일의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서경환 서울고법 민사합의26부 부장판사는 “일선 판사들이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공평한 재판을 바라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이름의 판사 회의가 열렸다. 100명의 법관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방해 의혹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 관련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업무 배제 및 문책을 요구한다는 결의사항이 나왔다.

회의 참석한 서경환 서울고법부장 #판사가 평가서 자유롭고 싶단 건 #사법개혁 아닌 집단이기주의 #상부 결정 비판 못하는 관료화 심각 #견제 위한 법관회의 상설화는 동의

이날 회의가 사법행정 전반에 대한 개선책보다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책임 문제에 집중된 데 대해 판사 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참석자 중 약 40명이 속한, 판사회의 개최를 주장해 온 법원 내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측의 입장도 듣기 위해 핵심 관계자 5명에게도 인터뷰를 제의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각급 법원 판사 회의에서 뽑은 판사 100명이 모였다. [조문규 기자]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뽑은 판사 100명이 모였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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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이 흩어지는 것보다는 집중되는 편이 오히려 국민들을 위하는 길일 수 있다.” 지난 19일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표로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에 참석한 서경환(51·사법연수원 21기) 민사합의26부 부장판사는 이 회의에서의 주류적 목소리와는 다른 ‘소수의견’을 밝혔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는 전국 2861명의 판사 중 161명(지난해 말 기준)이다. 법관회의에는 서 부장판사를 포함해 6명의 고법 부장판사가 참석했다.

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을 없애고 ‘판사가 완전히 독립해 자율적으로 재판하라’고 하면 명실상부한 재판의 독립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국민들이 좋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아니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공평하고, 신속하고, 꼼꼼하게 재판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19일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행정 기능의 분산, 사건처리율과 파기율(원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취소되는 비율) 등의 정량 평가를 반영하는 판사 근무평정 체계 개편도 회의 안건이었다.

서 부장판사는 현재의 사법행정에 대해선 “관료화가 심각하다”면서도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에서 관료화의 핵심 원인으로 꼽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와 법관 근무평정제도는 “다소의 보완은 필요하지만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무평정이 없어져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은 사법개혁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요직을 거친 그는 2015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때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법부의 관료화가 심각한가.
“기업 오너가 ‘투자합시다’ 하면 간부들이 ‘위험합니다’고 막아서지 못하는 식의 관료화가 법원에도 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평판사들의 회의체인 법관회의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회의가 사법행정권을 일선 판사들이 행사하기 위한 기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사들의 인사에 대한 불만이 큰 것 같다.
“근무지와 보직 결정 등 인사권 행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은 법원장이 ‘코드 인사’를 해 주요 재판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사태 이후 그런 법원장이 실제로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 부장판사는 승진의 길목으로 여겨지는 발탁성 자리를 두고 ‘코드 인사’가 벌어지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영장전담판사 같은 자리에 갈 사람을 결정할 때 법원장과 코드가 맞느냐 또는 ‘보수냐 개혁이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들쑥날쑥하지 않고 검증된 사람’을 뽑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주장처럼 일선 판사들이 인사에 관여하면 문제가 되나.
“어떤 자리에 누가 갈지를 법원장이 근무평정을 보고 뽑는 것과 판사들이 다수결로 뽑는 것 중 어느 편이 국민에게 좋을까. 후자로 가면 재판의 편차가 커져 더 많은 국민이 재판을 불신할 우려가 있다. 유사한 사건을 두고도 어떤 재판부에서는 징역 1년을 선고하는데 어떤 판사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는 식으로 편차가 커질 수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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