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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럭셔리 북한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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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잊지 못할 경험(Unforgettable Experience and Close Access)’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journeys to another world)’….

근사한 사진과 함께 이런 가슴 설레는 문구로 사람을 유혹하는 이곳은 어딜까. 뜻밖에도 예측불허 김정은의 나라 북한이다. 억류 17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송환됐다가 끝내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관광을 떠났던 바로 그 북한 말이다. 미국에선 웜비어가 겪은 끔찍한 비극을 계기로 북한 여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유럽은 물론 미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들조차 여전히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멋스러운 카피와 사진으로 지금 이 순간도 북한에 갈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최근 북한을 찾는 관광객이 점점 늘고 있는 데는 이런 여행사들의 역할이 컸다. 스웨덴의 한 북한 전문 여행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당장 7월 6일 떠나는 일정을 비롯해 1년에 무려 33차례의 단체관광을 진행하고 개별여행 상품까지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웜비어 소식이 알려진 뒤 “애초에 위험한 지역으로 여행한 게 잘못”이라는 식의 비판도 있었다. 여기엔 “가기 힘든 곳을 구태여 찾아가서 화를 자초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통일부 대변인 역시 올초 북한 관광객 증가 보도에 “극한지역 마니아”라고 한정했다. 마치 탐험가가 오지에 가듯 극소수만이 관심을 갖고 북한을 찾는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가기 쉬운 데다 비싸도 매력적인 곳으로까지 과대포장되어 있다. 2016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럭셔리 트래블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솔직히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 교관이 직접 나와 민간 우주여행을 준비 중인 버진 갤럭틱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등 공식 행사가 아니었다. 점심 테이블에서 만난 세계 각국 여행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북한 여행이 얼마나 쉬운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이날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1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북한 여행 경험자였다. 3성급 호텔에서 3박4일 묵는 개인 일정이 1460유로(약 185만원)나 하는 럭셔리 여행인데도 거리낌없이 다녀온다. 심지어 홍콩에 사는 영국인은 미성년자 아들을 포함해 온 가족이 북한에 여행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여행사들이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땅에 온갖 미사여구로 관광객을 끌어들인 대가를 웜비어와 그 가족이 치렀다. 이런 식의 ‘잊지 못할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