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수련관 겉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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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청소년 수련관이 있다는 건 알지만 제 또래 친구들이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주로 어머니들이 에어로빅 강습 받으러 다니시던데요. "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 공원.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온 김종민(17. 동작구 신대방동)군은 "일주일에 두세 번 공원을 찾지만 공원 내 청소년 수련관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 수련관에서 진행하는 여름방학 프로그램 안내서를 읽어 보았지만 참여하고 싶은 강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원 입구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건물 한쪽에 마련된 어린이 도서관과 청소년 유스텍은 텅비어 있었다. 포켓볼 교실.헬스장.탁구장 등 수련관 체육시설에도 성인들의 모습만 보일 뿐 청소년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같은 광경은 목동.문래.성북 등 다른 지역의 청소년 수련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성인을 위한 문화.체육강좌 위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문화를 즐기도록 마련된 청소년 전용 공간'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청소년 이용자 절반도 안돼=서울시에는 현재 수서.목동.문래.중구.중랑.노원.보라매.강북.성북.구로구와 지난 5월 개관한 동대문구까지 모두 11개 시립 청소년 수련관이 있으며, 각 자치구가 설립운영 중인 구립 청소년 수련관도 일곱 곳이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시립 청소년 수련관의 전체 이용자 가운데 청소년(9~24세)의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로 나타났다.

청소년 이용자 비율이 낮은 이유는 우선 청소년들이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신설 수련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설이 열악하다는 것도 청소년들이 외면하는 이유다. 한 수련관의 청소년 지도사는 "아이들은 '학교보다 시설이 못하다'며 수련관 오기를 꺼리고 성인들도 자치구의 복지센터나 사설 스포츠센터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운영비 마련 위해 수익사업 치중=청소년 수련관 실무자들은 "시설 운영비를 자체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안되는' 청소년 프로그램보다는 성인 대상의 수익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11개 시립 수련관 중 현재 시로부터 운영 보조금을 받는 곳은 수영장 시설이 없거나 시설이 노후된 다섯 곳뿐. 수영장이 있는 수련관은 자체 수익으로 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에서는 수영장 시설이 노후된 목동과 강북 수련관의 경우 각각 2001년과 2002년부터 전체 예산의 16~17%를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보조금 지원 기준을 바꾸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앙대 청소년학과 최윤진(崔胤眞)교수는 "청소년 수련관은 전문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효율적인 프로그램 마련이 어려워 청소년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신촌이나 대학로 같은 청소년이 몰리는 지역에 문화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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