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하룻밤 停電 손실엔 보험금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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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뉴욕시가 아수라장이 된 2001년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이틀간 문을 닫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브로드웨이 쇼가 테러로 중단된 것은 큰 사건이었다.

올 3월에는 28년 만의 뮤지션 노조 파업으로 나흘간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는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 지역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또 하루 동안 문을 닫았으니 최근 2년 새 세번이나 문을 닫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지난주 정전 사태 다음날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다시 문을 열었다. 단 하루 영업을 하지 못한 제작자는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아니다.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 제작자인 데이비드 스톤은 그날 하루 티켓 손실액만 8만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현재 뮤지컬 19편, 연극 4편이 공연 중이니 브로드웨이 전체로는 엄청난 금액이다.

제작자들이 외부의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으로 공연이 중단될 때를 대비해 미리 들어놓은 보험도 역시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9.11 테러와 파업으로 인한 공연 중단은 천재지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9.11의 경우는 희생자 추모의 성격이었고, 파업은 협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의 정전 사태야 말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제작자들은 좋다가 말았다. 쇼가 최소 이틀 이상 중단돼야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단 하룻밤 정전으로 인한 손실은 보상받을 길이 없게 됐다.

브로드웨이에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명제는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다. 관객을 위한다는 사명감은 사실은 둘째고, 금전적 손실을 원하지 않는 제작자들의 바람이 첫째다. 쇼가 중단돼도 보험을 통해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두었건만 하루 만에 들어와버린 브로드웨이의 전기가 이를 방해했다. 문을 연 극장에서 여전히 빈 객석을 바라보며 제작자들은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하루만 더!'를 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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