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전 결산투고…꼴지작품으로 습작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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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찍 닥친 추위로 손가락이 곱아 원고지에 글씨 쓰기가 힘들었던 1983년 12월초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에 쓴웃음이 피어난다. 머리맡의 소집영장은 1월 하순이면 군인이 되어야 함을 명하고 있었으니, 졸업식에는 참석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몹시도 울적하였다.(한해 늦은 졸업이어서 더 그랬다). 이제껏 신춘문예 심사평이나 문예지 신인상의 예심통과자 명단 같은데서 이름석자를 여덟번 발견하기까지 숱하게 응모했던 터라 84년 신춘문예도 전혀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외풍 센 방에서 동태가 되어 원고지를 메우는 일은 이래저래 고역이었다. 부엌에 가 파지를 바께스에 넣고 태우며 손을 녹이곤 했다. 겨우겨우 시 15편을 마감 전날까지 정서할수 있었다고 연례 행사였던 투고와 낙방이라 대학시절에 모은 재산을 여러 신문사에 나누어 헌납하고 입대하자는 심정이었다.
중앙일보사에서 전화가 왔을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첫째 이유는 중앙일보사에서 당선 통지가 왔기 때문이었고, 둘째 이유는 뽑힌 작품이 『화가 뭉크와 함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흔히 신춘문예는 심사위원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투고하게 마련인데 나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그래도 가장 희망을 걸었던 A일보에서는 종무소식이었고 괜찮은 작품을 보냈다고 생각한 B일보에는 심사평에 이름이 나와 있었다.
중앙일보에는 스스로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 것들을 묶어 보냈던 것이다. 당선작도 결과가 거꾸로 나왔다. 다섯 편 가운데 맨 밑에 깔려 있던 짧은 시여서 나는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시상식 바로 다음날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깎았다. 뭉텅뭉텅 잘려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나름대로 힘들었던 습작시절도 그렇게 끝이 났던 것이다. 훈련소의 겨울, 그 춥던 밤의 「팬티바람에 집합」이란 것도 추운줄 모르게 했던 4년전의 의욕과 열정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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