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세 때 수용소로 끌려갔던 혜법 스님, 48년 전 생이별한 가족 찾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경북 영주시 영산암의 혜법스님. 작은 사진은 선감학원 원아대장에 있는 스님의 어린 시절.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영주시 영산암의 혜법스님. 작은 사진은 선감학원 원아대장에 있는 스님의 어린 시절. [프리랜서 공정식]

경상북도 영주시 영산암(靈山菴)의 주지로 있는 혜법(慧法) 스님. 그가 사가(私家)에서 쓰던 이름은 ‘은주’다. 성(姓)도 정확하지 않다. ‘곽씨’ 또는 ‘박씨’로 짐작할 뿐이다.

일제 때 생긴 선감학원 강제 입소 #8년 뒤 탈출했지만 성도 기억 안 나

그는 선감학원 출신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말인 1942년 경기 안산시에 설립된 소년 수용소다. 부랑 청소년들을 감화시킨다는 명분으로 8~18세 소년들을 강제로 입소시켰다. 노역은 물론 학대와 고문 등 폭력도 이뤄졌다. 82년 문을 닫을 때까지 입소한 소년 수만 5759명, 이 중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혜법 스님은 8살 무렵이던 1969년 선감학원에 입소했다. 납치를 당했다고 했다.

“ 집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저쪽에서 차 한 대가 오더라고요. 차 안에서 내린 사람이 싫다는 저를 끌고 갔죠.”

이렇게 끌려간 곳(스님은 시청이라고 추정)에서 사람들이 이름과 집 주소를 물었다. 우물쭈물 ‘은주’라고 대답했지만 더 말을 했다간 맞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소년은 ‘한용수’라는 잘못된 이름을 가지고 선감학원으로 보내졌다.

학원 생활은 지옥이었다. 매일 맞았고 툭하면 기합도 이어졌다. 77년 9월, 소년은 다른 원생 5명과 탈출을 시도했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 위를 달려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살에 휩쓸려 죽거나 붙잡혀서 맞아죽거나 죽는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탈출에 성공한 뒤 동냥을 하며 고향인 수원에 도착했지만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80년대 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호적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집은 찾을 수 없었다.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 스무살 무렵 불교에 발을 들였다. 기도를 하면서 선감학원에서의 아픈 기억을 잊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집과 가족을 찾는 일도 접었다.

그러던 중 2015~2016년 무렵 언론을 통해 선감학원의 실상이 알려졌다. 순간 스님도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난해 기도 중 갑자기 예전 기억이 나는 겁니다. 누나한테 업혀서 산길을 걷고, 할아버지 장례 치르던 일, 삼촌과 놀던 기억…. ”

하지만 선감학원에 남아 있는 ‘원아 대장’ 속 그의 기록은 달랐다. 납치가 아닌 부모에게 버림받아 2년간 부랑아로 떠돌다가 1971년 11월 25일에 선감학원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혜법 스님은 “그 기록은 잘못 된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고 형이 2명, 누나가 1명 있었어요. 제 평생 소원입니다. 우리 가족을 꼭 찾아주세요.”

수원시는 선감학원과 관련된 기록물 전수조사와 함께 홍보전단지, 시청 홈페이지 등을 활용한 혜법스님 가족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수원시청 인권팀(031-228-2624~5)·인권센터(031-228-2617~8)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