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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와 넷플릭스는 피해자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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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로 개봉일을 확정했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개봉이 유보된 넷플릭스 영화 '옥자'. 스트리밍 영화와 전통적 극장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사진 넷플릭스]

29일로 개봉일을 확정했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개봉이 유보된 넷플릭스 영화 '옥자'. 스트리밍 영화와 전통적 극장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사진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 ‘옥자’를 CGV에서 볼 수 있을까? 현재 확정된 것은 없다. CGV 측은 이달 초 영화 배급사 뉴(NEW)에 공문을 보냈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동시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방식은 수용하기 어렵다. 극장 개봉을 먼저 하고 다른 플랫폼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유통질서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CGV 측은 “15일을 데드라인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옥자’는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가 투자해 만든 영화다. 190개국에서는 스트리밍으로만 공급되고, 한국ㆍ미국ㆍ영국에서는 극장 개봉 계획이 잡혔다. 한국의 극장 개봉은 스트리밍 서비스 개시와 동일한 29일로 예정됐다. 하지만 CGV가 스트리밍과 동시개봉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극장 개봉이 불투명해졌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또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진 않은 상황이다. 배급사 뉴 측은 “멀티플렉스 극장 개봉이 완전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고 가능한 극장을 미리 확보해놓고 있다”고 전했다. ‘옥자’는 12일 대한극장에서 언론 배급 시사를 연다.
전국의 상영관은 2575개다. 그 중 CGV가 996관, 롯데시네마 793관, 메가박스 590관이다. 세 곳을 제외한 상영관은 196개. 만일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 불가 판정을 내릴 경우 ‘옥자’를 볼 수 있는 전국의 영화관은 196곳 뿐이다.
‘옥자’를 극장에서 상영해야 할까? ‘옥자’ 상영과 관련한 쟁점을 전문가의 견해를 중심으로 짚어본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촬영 현장. [사진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촬영 현장. [사진 넷플릭스]

①관객의 볼 권리가 침해됐나?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박사는 “극장에서 ‘옥자’ 상영을 안 해도 소비자의 선택권은 살아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 가입해 영화를 보면 된다. 넷플릭스 이용 요금은 최소 월 9500원이다. 극장요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화면 크기 뿐이다. 조박사는 “넷플릭스 영화는 본래 비즈니스 모델이 극장 영화와 다르다"며 "다른 비즈니스 영역의 작품이 영화 시장을 활용하려다 빚어진 비지니스의 충돌"이라고 이번 사태를 정리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옥자' 개봉 유보 #스트리밍과 동시개봉에 대한 거부 차원 #"플랫폼 다양해지는 시대에 확실한 제도와 원칙 마련해야"

②극장 상영은 상도에 어긋날까?

반면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CGV가 주장하는 (한국의) ‘유통구조를 흐린다’는 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8일 페이스북에 썼다. 전화통화에서 그는 “한국에는 극장 영화와 스트리밍 영화 상영 사이의 질서에 관한 제도와 원칙이 없거나,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보다 원칙적인 부분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2014년 만든 ‘표준상영계약’에 따르면 극장 개봉 영화는 7일동안 극장에서만 틀어야 한다. 콘텐트 유통질서 확보 차원이다. 극장 이후에 IPTV, 지상파 TV등에 나간다. 하지만 강제 사항이 아니다.
문제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플랫폼은 다양해지고,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 제작 영화가 파워를 가지게 됐지만 영화 산업과 법규는 이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미디어의 기반이 끊임없이 변경중일 때 플랫폼의 변화에 따른 영화 공공성의 위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③상영 반대는 극장의 횡포?

상영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옥자’를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 강유정 영화 평론가는 “애초에 플랫폼이 다른 영화인 ‘옥자’가 극장 측에 상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고, 계속 고집할 수 있는 주장도 아니다”라고 했다. “넷플릭스와 극장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서 생긴 쟁점인데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극장과 안방 스크린의 영화가 아예 내용면에서 이원화가 됐다. 극장 영화는 스펙터클와 시각적 볼거리 중심으로, 넷플릭스 영화는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진중한 주제 중심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한국에서도 개봉 이틀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이라'가 좋은 예다. 강유정 평론가는 “플랫폼에 영화 내용을 최적화 시키는 식으로 탄력적인 대응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④새로운 미디어인 넷플릭스의 힘든 싸움?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번 논쟁은 넷플릭스의 완승”이라고 말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극장에서 꼭 틀고 싶겠지만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그런 건 아니다”라며 “가입자를 늘리는 게 이익인데 이번 논쟁으로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했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전세계 9800만명이지만 한국에서는 8만명쯤으로 추산된다. ‘옥자’ 논란으로 넷플릭스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극장의 저항 또한 넷플릭스의 이익에 편승하진 않겠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한 극장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동시개봉 결정과 날짜까지 정해 극장에 통보하듯 발표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넷플릭스가 정하면 한국의 극장들이 따라가는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옥자' 논란은 앞으로도 또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지 '옥자'를 극장에 거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머물지 말고, 변화하는 영화 산업과 유통 질서에 대한 원칙을 마련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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