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 한국어로 말해주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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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31면

15년 전쯤 한국에 처음 여행하러 왔을 때였다. 한국인 친구와 서울 사당역 근처 어느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때는 한국말을 몇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편의점 통로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친구와 영어로 대화했다. 계산하러 카운터에 갔는데 편의점 직원이 따지는 말투로 내 친구한테 뭐라고 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사람이면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외국인과 같이 다니는 한국 여성한테 따지고 싶어서 던진 말이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공감이 되는 면도 있었다. 나야말로 한국인들이 외국인한테 한국어로 이야기했으면 하는 사람이니까.

외국인들이 듣는 한국어 수업에 들어가서 한국어를 배울 때 뭐가 제일 어렵냐고 물어보면 거의 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만 하려고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스스로 영어 울렁증이 있다고 자주 말하는 한국인한테 놀라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문제는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한테도 한국어 안 하고 끝까지 영어만 시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영어 쓰는 걸 안 좋아해서 한국어만 쓰려고 한다. 하지만 어디 가서 한국어로 주문하면 3명 중 1명은 꼭 영어로 대답한다. 가끔 내가 대놓고 “우리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해도 그냥 “한국어 잘하시네” 하고 계속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식당에서 한국어로 주문하면 어김없이 나하고 같이 온 한국인을 향해서 주문 내용을 되묻는다. 내가 돈을 내도 거스름돈은 같이 온 한국인한테 주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럴 땐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4~5년 전 내 무료 영어 교실에 편의점에서 일하는 학생이 한 명이 있었다. 그 학생에게 “외국인 손님한테 한국어 먼저 써요? 아니면 영어 먼저 써요?”라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영어를 먼저 쓴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한국어 할 줄 아는 외국인이 많으니 한국어 먼저 써보라고 했다. 일주일 후 수업에서 만난 그에게 다시 물어봤더니 “외국인들이 거의 다 알아들었고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이 진짜 많았다”고 대답했다.

한국어를 존중하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외국인을 격려하고 싶다면 한국어로 먼저 말해 보고 안 통할 때만 영어나 손짓을 쓰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마이클 엘리엇
무료 유튜브 영어학습 채널팟캐스트 ‘English in Korean’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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