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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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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박혜민코리아중앙데일리경제산업부장

박혜민코리아중앙데일리경제산업부장

‘다음 생에는 공부 잘할게요,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부모에게 남기고 한 20대 청년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달 말 실종 나흘 만에 발견된 이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반도체회사에 다니다가 실직한 상태였다고 한다.

청년은 생각했나 보다.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었으면 부모님을 더 기쁘게 해 줬을 텐데 하고 말이다. 공부를 못해 대학에 못 갔고, 그래서 실직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평소 고졸 사원으로서 느끼는 자괴감을 가족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온갖 핑계를 대며 성적표를 안 보여 주고 있는 아들 녀석도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아들 얼굴만 보면 공부 안 하느냐 잔소리하는 내 모습도 떠올랐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건 모든 아이가 각자 다른 재능과 장점을 갖고 있다는 거다. 어떤 특징도 더 낫거나 못하지 않으며, 그저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이 국영수 공부에만 전념해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바란다. 그래야 어디 가서 기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마도 그 청년은 공부가 아닌 다른 쪽에 더 재능 있는 학생이었을 거다. 하지만 국영수 시험 점수만으로 성적을 매기고 순위를 내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그 청년은 스스로를 그저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살려 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청년에게 교육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직장을 잃었다고 삶에 대한 희망까지 저버리게 만든 이 사회 역시 그렇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교육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직업들이 등장하고,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 직장생활을 하던 이전과 달리 평생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시대가 오는 것이 반갑다.

현재의 교육은 극소수의 성적 우수자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을 모두 패자로 만들고 있다. 그런 교육으로는 다가오는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 줄 수 없다.

이미 사회는 변해 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 있게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학교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그 청년이 학교에서 그걸 배울 수 있었다면 다음 생이 아니라 이번 생에서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만 하다.

박혜민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