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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놀랐다 ‘3류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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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베네수엘라는 8일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며 달려나가는 베네수엘라 선수들. [대전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8일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며 달려나가는 베네수엘라 선수들. [대전 AP=연합뉴스]

베네수엘라가 우루과이를 꺾고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9일 베네수엘라 신문 ‘엘 우니베르살’은 자국 U-20 대표팀의 성과를 이렇게 전했다. ‘작은 비노틴토(la mini-vinotinto·베네수엘라 U-20 축구대표팀 애칭)가 전설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베네수엘라, U-20 월드컵 돌풍 #예선 포함 한 번도 안 지고 결승행 #시위·경제난 고통받는 조국에 선물 #두다멜 감독 “이젠 무기 내려놓을 때”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축구에 관한 한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 가린 약소국이다. 그런 베네수엘라가 사상 처음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올랐다.

11일 결승전에선 ‘축구종가’ 잉글랜드와 우승을 다툰다. 베네수엘라 플레이메이커 아달베르토 페냐란다(말라가)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기억에 남을 경기를 치르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예선을 3위로 통과했다. U-20 본선 무대는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 베네수엘라가 결승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베네수엘라 선수들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조별리그(B조)에선 독일·멕시코·바누아투를 연파하며 3전 전승을 거뒀다. 16강·8강·4강전은 모두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고 극적으로 승리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정부의 실정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과 이에 반발한 시민들의 반(反)정부 시위로 어수선한 상태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U-20 대표팀의 선전은 가뭄 속 단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전한 선수들 이상으로 라파엘 두다멜(44) 베네수엘라 감독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선수 시절 콜롬비아·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뛰었던 스타 골키퍼 출신이다. 그는 경기가 끝나면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자국민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달 26일 조별리그를 전승으로 통과한 후 두다멜 감독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 베네수엘라를 자랑스럽게 만들겠다”고 말했고, 지난 4일 8강전에서 미국을 꺾은 뒤엔 “위대한 조국의 자랑인 선수들이 위대한 승리를 일궜다”고 말했다.

결승 진출 확정 후 기뻐하는 라파엘 두다멜 베네수엘라 감독(왼쪽). [대전 AP=연합뉴스]

결승 진출 확정 후 기뻐하는 라파엘 두다멜 베네수엘라 감독(왼쪽). [대전 AP=연합뉴스]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은 그 백미였다. 승부차기 동안 두다멜 감독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고, 승리를 확정하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작심한 듯 정부를 향해 마음속 얘기를 쏟아냈다. 두다멜 감독은 “오늘의 17세 소년은 행복으로 가득 찼지만, 어제의 17세 소년은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오늘의 17세 소년’은 이날 후반 극적인 동점골을 뽑은 사무엘 소사(17)를, ‘어제의 17세 소년’은 경기 전날 반정부 시위 도중 사망한 네오마르 란데르라는 17세 소년을 지칭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며, 정부의 폭력진압으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다멜 감독은 “이젠 무기를 내려놓을 때”라고 마두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로이터통신은 “두다멜 감독 발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베네수엘라에서 급속히 퍼졌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4골로 득점왕을 노리는 공격수 세르히오 코르도바(카라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베네수엘라에 평화를 빌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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