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늘 뒷북 친다는 지적 가장 뼈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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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상이 급상승했다.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은 조국 민정수석의 브리핑을 통해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정례화하고, 각 부처의 인권위 권고 사항에 대한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지난 7일 인권위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호(60) 국가인권위원장은 “새 정부의 방침을 예상하고는 있었다”며 “인권위 위상을 강화하는 방침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인권위는 늘 뒷북 친다’는 지적이 가장 뼈아팠다”고 했다. 그는 2015년 8월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마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인권위원장이 됐다.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이성호 인권위원장 인터뷰 #정권 눈치 보느라 주저했던 점 있어 #시민단체와 협력 위해 소통팀 신설 #개헌에 맞춰 헌법기구화 추진할 것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7일 정부의 인권위 위상강화 방침에 대한 소견을 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7일 정부의 인권위 위상강화 방침에 대한 소견을 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주요 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이 더디다는 지적이 있다.
“솔직히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주저하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결정한 경우가 과거부터 쭉 있었다. 또 인권위 내부 프로세스 자체가 느린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때는 위원장 이름으로 성명을 냈는데 이런 형태의 ‘위원장 성명’도 활발히 낼 계획이다.”
인권위원 선임 절차가 불투명하다는데.
“선임 과정의 투명성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인권위원 선출 기관인 정부·국회·대법원에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한 인권위원 선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다들 ‘끄덕끄덕’ 하다가도 막판에는 난색을 표한다.”
보수 정부를 거치며 위상이 약화된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 때 인권위의 2개 국 11개 과가 폐지됐고 정원도 대폭 감축됐다. 2011년에는 인권위가 계약직 조사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한 데 대해 1인 시위를 벌인 직원 11명을 징계한 일도 있었다. 그 사이 인권·시민단체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래서 취임 직후 ‘소통협력팀’을 신설했다.”

이 위원장은 전임인 현병철(73) 전 위원장과 명확히 선을 그었다. 대부분의 여론이 현 전 위원장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2001년 창립 이후 지난해 인권위의 정책권고 및 의견표명(72건)이 제일 많았다”며 연간 보고서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회의록 등 결정 과정 공개에 대한 의견은.
“인권위 결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의록 공개도 검토 중이지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원 입장에서는 자기가 발언하는 모든 게 공개된다고 하면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낸다. 일례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결정을 냈을 때 반대한 위원들도 있었다. 합의를 거쳐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만약 이 회의록이 공개됐다면 일부 위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수 있었다.”
정부의 ‘인권위 위상 강화’ 방침 이후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최근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위원회 업무혁신 TF’를 꾸렸다. 인권위 조직 재설계, 신속한 현안 대응력 제고 방안, 위원회 업무 과정의 투명성 확보, 사무처 인력 구성의 다양화 등의 방안을 다루려 한다.”
남은 임기 동안은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숙원사업이었던 ‘인권위 헌법기구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인권위원장이 독립적인 권위를 지녀야 인권위가 예전처럼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이 같이 시행된다는데 이때 인권위의 헌법기구화를 관철시켜 보려 한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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