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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가 ‘어젠다’ 고민 적은 정부조직 개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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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 방향 키워드는 ‘안정’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출범한 정부인 만큼 개편을 최소화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민안전처를 해체해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시키고, 새로 중소벤처기업부를 만들기로 했다. 외교부 이관설이 나돌던 통상 기능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존치하고 통상교섭본부(차관급)를 신설하는 것도 주목된다. 이렇게 하면 기존 17부 5처 16청이 18부 5처 17청 체제로 바뀐다. 청와대·정부·여당이 어제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이다.

역대 정부와 달리 조직을 크게 흔들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수술대에 올린 건 평가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출범한 국민안전처의 사형선고는 당연하다. 연간 예산 3조원, 직원 수 1만3000명의 메머드급 부처지만 경주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재난·사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활되는 해경과 소방청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중소기업 활성화와 벤처산업 육성 역할을 할 중소벤처기업부도 마찬가지다. 관련 부처와의 업무 교통정리와 효율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이번 개편안에 시급한 국가 어젠다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건 유감이다. 저출산 극복과 관광산업 활성화, 통상 대책이 그렇다. 정부는 내년에 추가 개편을 예고했지만 그때까지 놔둘 사안이 아니다. 우선 저출산 극복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처럼 ‘1억 총활약상’(장관)을 두거나 인구부총리 또는 인구부 신설을 고려했어야 했다. 보건복지부에만 맡겨 두니 지난 10년간 100조원 넘게 쏟아붓고도 출산율만 곤두박질한 게 아닌가.

미래 성장동력인 관광산업에 대한 고민의 흔적도 없다. 관광청(가칭) 신설이 어렵다면 블랙리스트로 신뢰를 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기능과 역할 재조정을 고려했어야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난제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통상교섭본부 신설만으로 대처가 가능한지도 논란이다.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기 전에 국가 어젠다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