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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의 이상가족] ④두 얼굴의 언니, 돈이 뭐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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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의 이상(理想)가족]④두얼굴의 언니

아버지 돌아가시자 남동생 위해 상속포기한 자매 #"장애 있는 남동생, 부탁한다" 눈감은 어머니 #'아버지 재산 못받은 것 억울하다'며 돌변한 언니

중앙일보 디지털 광장 '시민 마이크'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 판사 경험을 살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변호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함께 합니다.  배인구의 '이상(理想) 가족'은 매주 1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사연은 사례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재구성·각색해 전달합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저는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50대 여성입니다. 제게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어요. 저희 3남매는 부모님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공부는 원 없이 시켜주셨어요. 언니는 남부럽지 않은 곳에 시집가서 자식들 잘 키우고 살고 있어요. 물론 혼수도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독신으로 살겠다고 하였고, 부모님이 활동을 하실 때는 따로 떨어져 살았지만 부모님이 연로해지신 후부터는 같이 살았습니다. 저는 지금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남동생은...태어나서 곧 큰 병을 앓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계속된 치료 덕분에 지금은 아주 간단한 내용은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저와 언니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부모님은 그런 남동생이 항상 걱정이었고, 독신인 제게 남동생을 부탁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어머니께서는 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남동생을 위해서 상속을 포기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언니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서 상속을 포기하였고, 아버지 재산은 어머니와 남동생이 상속하였습니다.

그런데 2개월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하시기 전에 저와 언니를 불러 남동생을 부탁한다고 하시며 남동생이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 생존하는 동안 넉넉하게 생활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남동생도 독신으로 살고 있으니 쓰고 남는 것은 형제들이나 조카들이 상속받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언니와 저는 어머니 앞에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남동생을 걱정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제가 언니에게 상속을 포기하자고 하니 언니가 태도를 바꿨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고 포기한 것도 억울한데 어머니 재산마저 포기할 수 없다면서요. 남동생은 아버지 재산 상속받은 것도 있으니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 남동생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은 대부분 부모님 묘소가 있는 임야로 그것으로 생활할 수는 없어요.

어머니는 남동생이 계속 월세가 나오는 시내 부동산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길 기대하셨던 것인데, 언니는 그 부동산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작=조민아 멀티미디어 담당

제작=조민아 멀티미디어 담당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려고 하는 사례자분의 마음이 무척 힘들겠습니다. 저는 서울가정법원에서 1년 동안 상속재산분할 분쟁을 다루면서, 자식들의 선의에만 기대어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핵폭탄을 하나씩 물려주고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각자 최고의 사랑을 주셨지만 자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분쟁을 거듭하며 갈등을 증폭시켜 나가곤 하더군요.  

사례자분의 경우 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되지 않으니 결국 사례자분이나 언니가 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심판을 구해야겠습니다. 만약 사례자분이 상속포기를 하시면 언니와 남동생의 법정상속분이 각 50% 비율로 되겠죠. 이와 달리 사례자분이 상속을 받은 뒤 본인 상속분을 동생에게 양도하시면 법정상속분은 남동생이 2/3지분, 언니는 1/3지분 비율이 됩니다. 그런데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진행하다 보면 부모님께서 자녀들에게 준 학자금, 혼수 등이 특별수익으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언니가 그동안 부모님이 남동생에게 지원한 생활비까지 상속재산분할에 반영해야 한다고 나올지 모릅다는 겁니다. 특별수익으로 평가되면 상속분을 미리 받은 것이 되어 상속재산분할로 받는 것이 줄어듭니다.

빚만 상속받는 상속인들도 많은 요즈음 상속재산이 있다는 것은 무척 행운입니다. 그런데 상속분쟁에서 만난 당사자들은 당초에 본인의 재산이 아니었던 부모의 재산을 나누는데 한푼도 양보하지 않더군요. 오래전에 부모님이 자녀에게 준 모든 금전거래를 모조리 밝히려고 하구요. 그러면서 갈등은 더 깊어지고... 부디 사례자분의 경우에는 초기에 조정과 화해가 성립되길 빕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제가 사례자분의 어머니였다면 남동생을 위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주장하는 성년후견제도와 신탁제도입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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