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문재인 정부 사드 전략, 환경평가·청문회로 시간 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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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의용 안보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늦춰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식 환경평가 평균 1년 이상 걸려 #국내 절차 강조하며 시간 확보한 뒤 #중국이 북 비핵화 나서게 하는 구상 #방미 정의용도 “환경평가 철저히”

한쪽으로는 국회 차원의 논의를, 다른 한쪽으론 환경영향평가의 엄격한 실시를 강조하며 사실상 사드 체계의 정상 가동을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확보한 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하는 식으로 사드 체계를 활용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일 “이달 열리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위해선 국회 논의가 불가피하고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면 미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드 체계의 정상 가동은 연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에 반입된 사드 발사대 가운데 2기만 성주에 배치돼 있고, 4기는 아직 모처의 미군부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1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나 “사드는 배치 결정의 절차적 문제, 민주적 정당성·투명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그걸 해소해야 한다”며 “사드 배치와 관련, 최근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국민 요구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정 실장의 발언은 주한미군에 공여한 부지가 일반 환경영향평가 기준인 33만㎡보다 적은 32만㎡(이 중 주한미군 설계부지는 10만㎡ 이하)라는 점을 들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약 6개월 소요)를 실시하겠다는 국방부의 기존 방침을 변경하겠다는 의미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민 공청회 개최 등이 포함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경우 전례를 볼 때 평균 1년 이상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여당은 국회로 사드 문제를 가져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방부의 사드 발사대 4기의 ‘보고 누락’ 의혹을 계기로 국회 차원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 1일 회의에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장관, 윤병세 외교장관 등을 증인으로 한 사드 청문회 개최를 추진키로 했다.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정의용 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면담 후 브리핑에서 “정 실장은 우리의 사드 관련 입장과 최근 발생한 보고 누락 문제 등을 설명했고, 맥매스터 보좌관은 설명해줘서 고맙고 이해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1년 이상 가동 안 되면 사드 철수할 수도”

하지만 여권 고위 관계자는 “만약 1년 이상 사드의 정상 가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사드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사드 체계를 아예 구매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운용 중인 사드 포대는 현재 전 세계에 6개 포대뿐이라 미 중부 군사령부(중동지역 담당) 등 여러 곳에서 배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앞서 딕 더빈 미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지난 1일 영문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를 원치 않으면 우리는 9억2300만 달러(약 1조300억원,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전직 외교관은 “사드 배치 속도를 늦추면서 대미·대중 외교적 레버리지로 삼으려는 접근법이 성공하기 위해선 험난한 산을 여러 개 넘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세현·유지혜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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