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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지구' 선택한 트럼프…'무역전쟁' 카드 던졌다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뜨거운 지구'를 선택했다. 그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선언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자는 세계 195개국의 합의를 묵살한 것이다.

트럼프 목적은 석탄 등 자국의 화석연료 산업을 부흥시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그의 공약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 내야 하는 탄소세를 없앰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탄소세는 국경조정세 성격이 있다. 미국이 탄소세를 적용하지 않고 제품이 수출할 경우 수입국은 수입품의 탄소 함량을 반영해 조정 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파리협약에서 탈퇴한 미국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보복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탄소세 철폐가 전세계를 무역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셈이다.

CNN머니는 무역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파리협약 탈퇴로 미국 제품의 가격이 싸지면, 교역국들은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미 행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무역 보복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공개서한에는 애플과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주요 25개 기업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미 국무장관인 렉스 틸러슨이 11년간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했던 석유 업체 엑손모빌도 동참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 제프 쇼트는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무역 협정을 개정할 명분을 잃게 됐다"며 "앞으로 미국 기업에는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역뿐만이 아니다. 그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전기차 개발과 태양광·풍력 발전 기술 발전 등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탄소세 매커니즘이 붕괴는 기업의 혁신 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이멜트는 트위터에 "탈퇴 결정에 실망했다. 산업계는 앞으로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와 디즈니 CEO인 로버트 아이거도 비판 성명을 내고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 효과는 있을까.

광부에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단체인 '마인드마인즈'(Mined Minds)의 리더인 아만다 라우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석탄업 종사자들은 일자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10년부터 석탄화력발전소 251개를 폐쇄하는 등 석탄 소비를 줄이고 있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석탄 화력발전소인 애리조나주의 나바호(Navajo) 발전소 역시 2019년 말 문을 닫는다. 경제성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의 MWh당 생산 비용은 95.1달러다. 천연가스와 함께 쓰이는 복합화력 발전소보다 31%나 비싸다. 고용 효과도 석탄보다는 신재생에너지가 더 높다. FT는 "미국의 태양광 발전 산업 노동자 수는 최소 37만4000명, 풍력 발전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0만2000명인 데 비해 석탄 채굴 및 판매분야에서 일하는 인력은 각각 8만6000명, 7만4000명에 불과하다"고 미 에너지부의 보고서를 인용 보도했다.

또 2015년 파리협약 체결 이후 934억 달러 규모로 불어난 녹색채권(그린 본드)의 손실 가능성도 있다. 녹색채권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활동이나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미국·영국계 자산운용사들은 지난해부터 관련 상품의 투자를 늘려왔다.

한국은 당장 유엔 산하 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GCF·Green Climate Fund)의 운영이 걱정이다. 사무국이 한국에 있어서다. GCF의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미국이 탈퇴할 경우 조직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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