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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관계가 한국에 중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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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이클 그린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선임부소장

북한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지금, 미국-유럽 관계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으로 적절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은 국제질서에 달려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 때문에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번영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 중심의 국제질서 #트럼프가 만든 ‘서구’의 균열 #봉합될 수 있을지 늘 주시해야

이는 대서양 양쪽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유럽 방문이 “대성공”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유럽 언론의 머리기사들은 트럼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집단안보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하지 않았다. 나토가 출범한 1948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비 기여가 충분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유럽 동맹국들의 지도자들은 그를 차갑게 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를 노려보며 악수할 때 기싸움을 걸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이 더 이상 외부의 동맹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유럽 관계가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경고했다.

미국-유럽 관계가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정치적인 맥락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매체들은 대부분 진보적이다. 보수파 대통령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다. 부시 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대통령 또한 유럽 정상들과 처음 만났을 때에 ‘투박한’ 행동거지가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갈등 중에는 정당한 것들도 있다. 예컨대 미국 의회는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의 접근법에 대해 예전부터 회의적이었다. 또한 미국의 공화당 행정부들이 결국에는 유럽과 합의점에 도달했다는 과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또한 첫 임기에 유럽과 갈등이 있었다. 이번에 브뤼셀과 시칠리아에서 부각된 마찰이 트럼프의 임기 말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유럽 간의 갈등을 한국이 주시해야 할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1950년 이후 한국의 생존은 한·미 동맹뿐만 아니라 미·일 동맹과 나토가 포함된 큰 틀의 동맹체제에 의존했다. 유럽의 집단안보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은 동아시아로부터 군사력을 빼내어 유럽에 투입해야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국가는 유럽의 러시아와 중동의 이란, 동아시아의 중국이다. 지역 패권을 꿈꾸는 이들 나라 중에서 경제적으로 현재의 국제질서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중국이 충돌을 일으키는 면에서 가장 소극적이다. (북한은 지역패권을 추구하지 않지만 국제질서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큰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의 선거에 공세적으로 개입했으며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붕괴시켰다. 또한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군사·사이버 위협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對)러시아 정책에 균열이 생기면, 유럽 내 안보에 공백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푸틴 대통령은 더욱 과감하게 돼 미국은 북한 문제에 집중할 수 없다.

둘째, 공통의 민주주의 가치가 미국 동맹 체제를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중동의 권위주의적인 동맹국들을 칭송했다. 그는 중동의 인권 문제를 시비 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동맹 관계에서 의미를 상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관계나 북·미 관계를 순전히 ‘거래’ 차원에서 다룰 것이다. 가치를 중시하지 않게 되면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축소된다.

셋째, 백악관에서는 국제주의자들과 미국중심주의자들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스티브 배넌 같은 미국중심주의자들은 반(反)유럽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주권 상실과 지나친 자유주의를 멸시한다. 그들은 또한 1930년대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려고 한다. 그들은 가능하면 세계무역기구(WTO)와 유엔을 탈퇴하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우선주의자’들은 동시에 ‘아시아우선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중심주의자들은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들 사이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트럼프 의 유럽 방문으로 미국의 대서양주의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나토의 중요성을 잘 안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유럽 관계의 균열이 봉합될 수 있을지 주시하는 게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위협,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부상 때문에 20세기 후반에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를 지탱한 ‘서구(the West)’라는 개념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한편 서구라는 개념은 이제 부정확한 개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들 중에는 대한민국 같은 아시아의 민주국가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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