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 여성 CEO 평균 연봉이 남성보다 많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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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임금을 비교하면 통상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다. 한국ㆍ미국을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을 때 '성별임금격차(gender pay gap)'가 있다고 표현한다. 한데 성별임금격차 현상이 역전되는 경우가있다. 미국 주요 대기업에서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봉이 남성 CEO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 주요 대기업의 여성 CEO들은 남성 CEO보다 평균 연봉을 19% 더 많이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스탠더드 앤드 푸어(S&P) 500지수에 속한 주요 대기업 CEO 403명의 연봉을 분석한 결과다.

2016년 포브스가 뽑은 가장 파워풀한 IT 여성 톱7에 오른 버지니아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 [중앙포토]

2016년 포브스가 뽑은 가장 파워풀한 IT 여성 톱7에 오른 버지니아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 [중앙포토]

1일 WSJ에 따르면 여성 CEO 21명은 지난해 연봉 등으로 평균 1380만 달러(약 154억원)를 받았다. 남성 CEO 382명의 평균 연봉 1160만 달러(약 130억원)보다 19% 많은 금액이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여성 CEO는 IBM의 버지니아 로메티 CEO였다. 그의 연봉은 2015년 1980만 달러(약 221억7600만원)에서 지난해 3270만 달러(약 366억 2400만원)로 올랐다.
휴렛패커드의 맥 휘트먼 CEO, 펩시콜라의 인드라 누이 CEO가 뒤를 이었다. WSJ가 CEO 연봉을 분석한 지 28년만에 처음으로 연봉 랭킹 '톱 10'에 여성 CEO 3명이 포함됐다.
평균적으로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은데, CEO급에서는 성별임금격차가 역전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여성 CEO가 이끌고 있는 기업의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봉도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성 CEO가 경영하는 기업의 지난해 총주주수익률(주가 및 배당수익)은 평균 18.4%로, 남성이 CEO를 맡은 기업의 평균(15.7%)보다 높았다.
콘페리인터내셔널의 임원 급여 전문가 어브 베커는 “총주주수익률과 경영 실적이 우수한 기업의 이사회는 CEO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보상을 관대하게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총주주수익률이 55%인 휴렛패커드의 멕 휘트먼 CEO는 지난해 3560만 달러(약 398억원)를 받았다.

휼렛패커드(HP) CEO 멕 휘트먼. [중앙포토]

휼렛패커드(HP) CEO 멕 휘트먼. [중앙포토]

WSJ는 일부 여성 CEO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데, 이사회에서 이를 높이 평가해 연봉과 보상 패키지를 넉넉히 챙겨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 여성 CEO의 실력 자체가 탁월하기 때문에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WSJ는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중에서 극소수만 CEO에 오르기 때문에 이들은 능력이 탁월한 ‘슈퍼스타’급 CEO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남성의 경우 반드시 슈퍼스타급이 아니어도 CEO 자리에 오를 수도 있지만, 여성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 그 자리에 임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드라 누이 펩시 최고경영자(CEO). [중앙포토]

안드라 누이 펩시 최고경영자(CEO). [중앙포토]

CEO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을 양성평등한 방향으로 구성하는 최근의 트렌드도 작용했다. 양성평등한 최고경영진을 꾸려야 한다는 압력과 책임감을 느끼는 기업들이 능력있는 여성 CEO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다보니 연봉과 보상을 더 많이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여성 CEO의 비율이 미미하고, 양성 평등 이슈에 관한 세간의 이목을 고려해 여성 CEO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S&P 500 대기업의 여성 CEO 수는 2015년과 같은 28명이었다. 이 가운데 7명이 은퇴하거나 CEO를 맡은 지 1년 미만이어서 조사 대상은 21명으로 줄었다. 여성 CEO는 전체의 5% 정도를 차지했다.
남녀 근무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카탈리스트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S&P 500지수 소속 대기업에서 일하는 전체 근로자 가운데 44.3%가 여성이었다. 여성은 고위직의 25.1%, 이사회 멤버의 19.9%, CEO의 5.8%를 차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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