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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콧대 높이고 주름 없애주는 필러 시술 … 혈관 막아 피부괴사·시력손상 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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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원재 교수의 건강 비타민 

#대학 진학을 앞둔 윤모(20·경기 수원시)씨는 평소 코가 낮은 게 고민이었다. 그래서 필러 시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호감이 가는 얼굴이란 소리를 듣지만 미간 사이 콧대(코뿌리)가 낮은 것이 늘 콤플렉스였다고 했다. 동네의원에서 “성형수술은 필요 없고 필러 주사만 맞으면 수술 이상의 효과가 난다”고 해서 간단하게 필러 주사를 맞았다.

코 끝, 눈 주위에 맞을 때 특히 주의 #부작용 피해 상담 3년간 500여 건 #장단점 다 알리는 의료진 선택해야

그런데 윤씨는 필러를 맞고 몇 분 뒤에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눈 주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통·구토 증상이 생겼다. 사시가 생겼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複視)와 현기증까지 나타났다. 시력은 0.3으로 뚝 떨어졌다. 코뿌리에서 콧등 방향으로 피부가 심하게 부으면서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 MRI와 CT를 찍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혈관조영술을 했더니 안구·망막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이 일부 막혀 있었다.

윤씨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3일간 눈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매일 피부를 소독하며 닦아냈고 2주간 항생제를 먹게 했다. 시력은 0.6으로 약간 회복됐다. 피부의 곪은 부위도 치료됐지만 약간의 흉터가 남았다. 석 달 뒤 사시가 사라졌고 안구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복시는 그로부터 한 달 반 지나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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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러는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도 수술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프티 성형’의 대명사로 불린다. 필러 주사로 코끝이나 콧등을 높여준다고 광고하는 데가 많다. 성형외과·피부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의원도 무척 많다.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필러 시술을 하다 적발되기도 한다. 필러·보톡스 등을 섞은 이른바 ‘물광주사’ ‘신데렐라 주사’도 인기다.

하지만 필러 시술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3년간 필러 부작용 피해 상담 사례는 524건이었다. 필러 부작용은 염증(16.8%), 부종(12.4%), 울퉁불퉁한 피부면(9.4%), 비대칭(7.6%), 피부 괴사(7.4%), 결절(6.9%), 함몰(6.5%), 피부변색(5.2%), 통증(5%) 순이었다.

필러는 심각한 피부 괴사(썩는 현상)나 실명 위험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성형외과 연구팀은 2012년 필러 부작용 논문 42편에 언급된 환자 61명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심각한 부작용인 피부 괴사가 발생할 위험성이 가장 높은 필러 주사 부위는 코(33.3%)였다. 실명 위험이 가장 높은 부위는 미간(50%)이었다.

얼굴에 필러를 맞을 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피부 괴사(파란색 원)는 코, 시력 손상(붉은색 원)은 미간, 아나필락시스(노란색 원)는 입술 위에 필러를 맞을 때 가장 많이 발생한다. [자료 :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성형외과 연구팀]

얼굴에 필러를 맞을 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피부 괴사(파란색 원)는 코, 시력 손상(붉은색 원)은 미간, 아나필락시스(노란색 원)는 입술 위에 필러를 맞을 때 가장 많이 발생한다. [자료 :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성형외과 연구팀]

연구팀은 필러의 부작용을 중증도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가벼운 부작용은 반상출혈(피부에 검보랏빛 얼룩점이 생기는 현상), 부종·홍반(붉은 돌기)이다. 중간 정도 부작용은 과도한 교정, 피부면의 울퉁불퉁한 증세, 필러 노출, 육아종(피부 염증성 종양의 일종)이었다.

가장 심한 부작용은 시력 손상, 피부 괴사,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과민반응)로 이런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높은 얼굴 부위는 코·미간·입술 주변이다. 심한 부작용 발생률은 1만 명당 한 명꼴이지만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필러는 이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까. 주사로 주입한 약물이 혈관을 막기 때문이다. 보톡스는 체내에서 물처럼 생체 조직에 스며든다. 하지만 꺼진 부분을 채우는 효과가 큰 필러는 일정 기간 피부 조직에 머문다. 시술 과정에서 필러가 혈관을 막으면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다. 심장 관상동맥이 혈전(피떡)으로 막혀 허혈성 심근경색증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부위는 조직이 괴사할 수 있다. 또 시신경이 손상되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혈관을 막은 필러를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 필러의 재료인 히알루론산은 ‘히알루로니다아제’라는 효소로 분해할 수 있지만 가느다란 혈관을 막고 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녹이기가 불가능하다. 인공 화합물인 히알루론산을 쓰지 않고 자가 지방을 필러로 사용하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자가 지방 이식은 하지 정맥의 피가 잘 안 통하는 ‘심부정맥 혈전증’이나 폐 혈관을 막는 ‘폐동맥 색전증’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필러는 유용한 프티 성형의 한 방법인 것은 맞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작용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들은 대부분 시술 전에 장점만 들었다고 말한다. 꼭 필러를 맞아야 한다면 장단점을 균형 있고 자세히 설명하는 병원·의사를 선택해야 한다. 코끝과 눈 주위에 필러를 맞아야 한다면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충분한 상담을 받은 뒤 결정하는 게 좋다.

◆이원재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연세대 의대 성형외과장, 대한성형외과학회 편집위원

이원재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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