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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픈 손가락’ 아들 편애, 생전 재산 90% 몰아줘 딸들의 반란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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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6면

[탐사기획] 혈연이 해체된다 <상> ‘피고는 아들, 원고는 딸’ 상속 분쟁 

부모의 편애는 실제로 존재할까. 부모의 재산을 놓고 벌어진 자식 간 소송 사례를 통해 부모의 생전 재산 증여 현황을 추적한 결과 많이 받은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의 재산분배 비율이 9대 1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문화됐던 유류분 조항 #딸들 권리의식 향상으로 이용 활발 #부모 공동 부양하는 세태도 반영 #법정 상속 지분의 절반인 유류분 #그 이하 땐 유언 상관없이 청구 가능 #원고 57%는 딸, 피고 50%는 아들 #“유족 생계 곤란시 유류분 적용 필요”

중앙SUNDAY는 최근 1년여간 서울중앙지법 등 수도권 7개 법원과 5대 광역시 소재 법원에서 선고된 유류분 소송 판결문 107건을 분석했다. 유류분 소송은 자신의 법정 상속지분의 절반에 못 미치게 상속받은 이들이 다른 상속인들을 상대로 부족한 부분을 돌려달라고 내는 소송이다.

예컨대 부모가 두 형제에게 재산 1억원을 남긴 경우 동생이 2500만원보다 덜 받았다면 그만큼을 채워 달라고 형에게 낼 수 있는 소송이다. 판결문에 기재된 원고 측 자녀와 피고 측 자녀에게 증여된 특별수익(생전에 특별히 일부 자녀에게만 준 재산)을 조사한 결과 원고 측은 평균 2억4067만여원, 피고 측은 평균 20억7312만여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율상으로는 원고 측이 1, 피고 측이 9에 해당된다. 적어도 재산 분배 측면에서는 부모의 편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속전쟁』 저자인 구상수 법무법인 지평 회계사는 “유언장 쓰려는 부모와 상담하면 대부분 재산을 남겨주고 싶지 않은 자녀가 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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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편애는 사후 자녀들 간 소송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근래 벌어지는 소송은 성별 간 대결 양상을 띤다. 본지 조사 결과 유류분 소송 원고 231명 중에선 딸이 56.7%로 많았다. 아들은 29.4%였다. 반면 피고 178명 중엔 아들이 50%였고 딸은 15.2%였다. 그간 부모로부터 유무형적으로 차별받았던 딸들이 혜택 받은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모양새다. 원고 중 76.6%는 생전 증여가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실무를 하다보면 원고 중엔 딸이 확실히 많고 아들이 포함돼 있어도 대부분은 차남, 삼남”이라고 설명했다.

집 같은 큰 재산 아들에게 주려는 경향

실제 로펌에는 부모 편애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0대 주부인 김모씨도 최근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70대 후반인 어머니가 장남인 오빠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오빠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5년간 연락이 끊겼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10년 넘게 매달 50만원씩 용돈 드리고 철마다 김치도 직접해서 가져다 드렸다. 뭔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집 한 채가 유일한 재산인 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하니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열 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70대 이상 세대에게 더 아픈 손가락은 아들 그중에서도 특히 장남이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과 같은 큰 재산은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피고의 항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은 유형은 “원래 내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다. 전체 16.8%의 사건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에서 판결한 홍모씨의 자녀들이 낸 소송이 이에 해당된다. 큰딸 등 4명은 2014년 아버지 사망 후 장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장남이 11년 전인 2003년 아버지로부터 5억여원 상당의 토지를 받았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남은 “토지 매매대금은 내가 지급했다. 명의만 아버지 소유로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유류분에 해당하는 5300여만원씩을 나눠주도록 했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상대방도 받았다”는 주장이다. 전체 15%가 이 같은 주장을 내세웠다. 서울동부지법이 지난해 10월 선고한 하모씨 사건에서 큰딸 등 5명은 장남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0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7억여원 상당의 성수동 소재 집을 장남에게 증여해 줬기 때문이다. 하씨는 사망 당시 남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 장남 측은 “원고 중 일부가 아버지로부터 1억원의 돈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원고 측은 “몸이 아픈 아버지를 위한 병원비나 치료비, 세금 등을 지불하기 위한 것일 뿐 증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후적으로 아버지를 위해 지출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 돈을 증여받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양측이 받은 특별수익을 모두 포함시켜 유류분을 분배했다. 이 밖에 “부모를 봉양한 대가다”(13.1%), “소멸시효가 지났다”(9.3%) 등의 주장도 나왔다.

유언보다 효력 강한 유류분 규정

유류분은 1977년 민법 개정과 함께 도입돼 79년부터 시행됐다. 유언이나 증여로 자녀 중 일부에게만 재산을 몰아 줄 경우 나머지 상속인들의 생존과 부양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자는 취지였다. 예컨대 아버지가 재혼했을 때 전처 소생 자녀들이 상속에서 소외받는 경우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또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온 가족이 농사에 동원되기 때문에 비록 아버지 명의 재산이더라도 자녀들의 기여도가 크다는 점도 고려한 입법이었다.

도입은 됐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부장제 문화의 영향으로 가장의 재산분배 결정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남이 부모 부양을 주로 전담해왔던 점도 다른 자녀들이 반발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문화됐던 유류분 규정을 들고 소송을 내는 이들이 점차 늘었다.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부모 부양이 자녀들 공동의무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69건에 그쳤던 유류분 소송 접수 건수는 지난해 1091건으로 늘었다. 변희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예전엔 장남이 가문의 재산을 보존하는 등의 주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부양도 공동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상속재산을 장남이 더 받는 것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류분 소송이 늘어난 것은 경직된 규정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전에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해주고 유언을 남겨놨어도 자녀들이 부모 사후에 소송을 내면 자신의 유류분만큼은 무조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류분은 유언장보다 효력이 더 강하다. 아버지가 유언을 통해 한 자식에게 재산을 몰아줬어도 유류분이 침해됐다면 다시 토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2015년 사망한 권모씨의 딸들이 장남을 상대로 낸 소송이 그 예다. 권씨는 2006년 1월 “강남구 논현동 등에 있는 부동산을 장남에게 유증한다”는 내용이 기재된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다. 2007년에는 자녀들을 모아 놓고 “장남을 상대로 어떤 소송도 내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도 작성하게 했다. 하지만 권씨 사망 후 딸들은 소송을 냈다. 유언으로 증여한 부동산 가액이 49억여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장남 측은 “소송 안 하기로 합의했다. 원고들은 아버지 생전에 자식으로서 도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경제적 도움만 받아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는 지난해 말 “유류분을 포함한 상속의 포기는 상속 개시 후 일정 기간만 가능하다. 이 사건 합의는 요건을 갖추지 않은 만큼 원고들의 유류분 청구는 인정된다”며 유류분만큼 지분을 나눠주도록 했다.

“사회 환원 YS 재산, 혼외자에게 3억 지급”

가족법 전문가들 사이에선 도입 후 38년이 지난 유류분 제도를 시대에 맞게 고쳐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사적 재산 처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측면이 요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류분 청구권이 분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외국에서는 무조건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유가족의 생계가 곤란하면 주라는 취지로 운영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재산의 일정한 몫은 가져갈 수 있게 하고 있다. 더구나 공익 목적으로 쓰더라도 유류분을 주장하면 돌려줘야 한다. 죽은 사람의 유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법원에서 강제조정 결정이 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혼외자 김모(58)씨의 유류분 소송도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다. 김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김영삼민주센터 등에 거제도 땅 등을 기부했다. 하지만 공동상속인인 김씨는 유류분권이 침해됐다며 소송을 냈다. 결국 법원은 김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민주센터가 3억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수십 년 전 증여한 재산도 유류분 청구 대상이 되는 점도 문제다. 민법에는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 1년 이내에 증여한 경우만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공동상속인들 간에는 적용이 안 된다. 즉 형제자매 간 소송에선 수십 년 전에 부모가 결혼할 때 준 전세자금, 유학비용 등 특별수익도 증거만 있다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경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너무 오래 전에 넘겨받은 재산은 제외하고, 유류분 대상이 되는 재산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민법에 유류분 관련 조문은 7개에 불과하다.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입법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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