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무용

새로운 시대, 새로운 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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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인주무용평론가

장인주무용평론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났다. 발단은 단순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한 일부 과격파가 체포되자 낭테르 대학 재학생들이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시위는 소르본 대학으로 번져 일반인도 동참했다. 비록 직접적인 정치 혁신을 끌어내진 못했지만 혁명은 축제와 같았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슬로건을 제시하는 등 인식의 지평이 새롭게 넓혀지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프랑스 68혁명이 남긴 것

무용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화와 토론이 분출하던 시기였기에 평상시 말보다 신체 언어에 익숙한 무용가조차 토론의 장(場)에 합류했다. 지적 수준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예술의 서열주의를 타파하고 소수문화를 중시하는 문화민주주의 운동도 이때 시작됐다. ‘누벨 당스(Nouvelle Danse)’ 시대의 도래였다.

누벨 당스는 ‘새로운 춤’이란 뜻이다.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를 갈망하는 무용가의 열정이 작품에 녹아들면서 형상화됐다. ‘누벨 바그’가 영화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듯이 누벨 당스 역시 시대정신을 담아낸 춤이었다. 기존 관습을 떨쳐내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만큼 무용계 내부 문제점도 과감하게 들추고 다가올 앞날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누벨 당스 작품들은 이런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는 예술적으로 승화하면서 ‘68혁명’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자연히 합류했다.

프랑스 누벨 당스 안무가 필리프 드쿠플레가 연출한 ‘콘택트’. 지난해 국내 공연됐다. [사진 LG아트센터]

프랑스 누벨 당스 안무가 필리프 드쿠플레가 연출한 ‘콘택트’. 지난해 국내 공연됐다. [사진 LG아트센터]

누벨 당스는 영화나 연극적 요소를 도입해 움직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이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 만큼 표현의 한계는 무한 확장돼 갔고, 작품 소재도 다양해졌으며, 시각·청각적 요소의 도입도 빈번해졌다. 대표적인 안무가로는 마기 마랭, 장클로드 갈로타, 앙줄랭 프렐조카주 등이 있었다. 1992년 서른한 살 나이로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은 필리프 드쿠플레도 그 연장선에 있던 예술가였다.

49년이 지난 한국의 5월, 우리는 어떤가. 지난해 이화여대생들의 부정입학에 대한 작은 반발에서 출발한 평화로운 시위는 결국 1년의 시간을 거치며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국정 농단은 ‘블랙리스트’라는 퇴행적인 모습으로 문화예술계를 빈사상태로 몰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우리도 68혁명 이후의 프랑스 변화처럼 새로운 예술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등 50년 넘게 이어온 낡은 3분법, 전통은 새로워지기보다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 1인 다역에서 드러나는 이해관계의 얽힘 등 지금껏 무용계가 공익보다 기득권의 사익에 의해 움직였고, 그 때문에 창의성마저 발현되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할 때다. 거대 권력에 맞서 스스로 세상을 바꾼 용감한 국민의 자유로운 영혼을 투영하는 예술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블랙리스트를 화이트리스트로 바꾸는 유혹에서 벗어나 시위를 축제로 바꾼 자유로운 영혼이 춤에 담기기를…. 혁명은 새로운 예술을 잉태한다.

장인주 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