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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한국에 대한 영시 세 편 써"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계관 시인 로버트 하스.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사진 대산문화재단]

미국의 계관 시인 로버트 하스.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사진 대산문화재단]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77)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76)다. 해외 저명 문인이 한국에 대해 작품을 쓰는 경우 말이다. 대표적인 친한파 작가인 르 클레지오는 최근 서울을 배경으로 두 한국 소녀가 등장하는 작품을 집필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하반기에 출간 예정인 소설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다음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로도 출간한다고 한다. 가제 '빛나 언더 더 스카이(Bitna under the sky)'. 주인공 소녀 '빛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한파 시인이라고 해야 할 하스는 과거 한국 방문 경험을 살린 시 세 편을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On visiting the DMZ at Panmunjon: A Haibun(판문점, DMZ를 다녀와서)', 'The bus to Baekdam temple(백담사행 버스)', 'From regalia for a black hat dancer(검은 머리 댄서를 위한 옷)'다.
 그중 고즈넉한 서정시인 'The bus to…'의 시행은 이렇게 흐른다.
'The freeway tracks the Han River which flows/ West out of the mountains we are heading toward./ This morning it is river-colored, grey green,/ Streaked with muddy gold, and swift. August,'
 번역자 정은귀씨는 시행들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길은 한강을 따라간다. 우리가 향하는/ 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는 강./ 오늘 아침 그 길은 강 빛을 닮아 회청색,/ 황금색 줄무늬에 바람결. 팔월.'
 하스는 "전형적인 내 스타일의 시"라며 "열린 마음으로 여행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발견의 순간'을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하스는 대산문화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23~25일)에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25일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시와 시장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현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석좌교수다.
 그는 이날 "1986년 첫 방한 당시 TV로만 보던 한국전쟁 직후의 흑백 폐허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아름다운 농촌과 한국산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에 바로 사랑에 빠졌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에 대한 영문 책자를 구해 읽었는데 그동안 한국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하는 반성이 생겨 한국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22일 기자회견을 하는 로버트 하스. 왼쪽은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 

22일 기자회견을 하는 로버트 하스. 왼쪽은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

 한국의 고은 시인을 당시 만나 친해진 사연도 공개했다. 한 행사장의 무대 뒷편에서 마른 근육질의 50대 남성이 커다란 북을 치고 있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 보여 옆에 있던 통역에게 누구냐고 물었다니 고은 시인이라고 하더라는 것. 훗날 고은 시인의 대표작인 '만인보'를 접했는데 "거칠고 에너지 넘치면서 유머스럽고 사실적인, 내가 본 한국이 그의 시 안에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어를 못하고 고은은 영어를 못하지만 우리는 서로 잘 통한다"는 말도 했다.
 산문시 성격의 'On visiting the DMZ…'에는 한국전쟁의 세세한 사실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2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한국전쟁에서 죽었다는데 그 처럼 많은 몸들을 망가뜨리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시의 한 대목이다.
 시는 산문처럼 흐르다 마지막에 일본의 정형시가인 하이쿠 형식으로 바뀐다. 'The flurry of white/ between the guard towers/ -angel? a wedding party?(경비탑 사이로/ 하얗게 북적대는 것/ 천사인가 결혼식인가?)'.
 하스는 "한국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이어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 사람인 내가 일본의 시 형식을 빌려 한국전쟁을 그린 시에서 시적인 아이러니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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