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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5·18때 찾은 비빔밥집은 '광주 민주주의 사랑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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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우리 식당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밤잠을 설쳤습니다. 가게 매출을 떠나 평생 민주화에 앞장서온 형제들의 노력이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광주 '화랑궁회관', 문 대통령 방문 후 손님들로 '북적' #주인 가족들, 각종 시국사건으로 구속 '민주화 형제들'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들렸던 8000원짜리 비빔밥 #"광주 민주주의 사랑방 역할" 입소문에 전국적 '화제'

23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화랑궁회관. 식당 바깥주인인 이황(62)씨는 "대통령님이 일부러 우리 식당을 찾아주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비빔밥 손님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님이 식당을 찾아주신 5월 18일 이후로는 육회(생고기) 비빔밥 재료가 떨어져 손님들을 돌려보낼 정도"라며 "소고기와 나물 등 갖가지 재료들이 어우러져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국민 화합을 이뤄주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한 후 점심을 먹은 식당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대통령이 다녀간 후 광주와 전남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손님들이 찾고 있어서다.

화랑궁회관을 찾은 손님들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쓴 친필 족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랑궁회관을 찾은 손님들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쓴 친필 족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제37주년 5·18기념식을 마친 직후 곧바로 이 식당으로 향했다. 5월 단체 관계자 및 광주시민·사회 관계자 등 40여 명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8000원짜리 육회비빔밥을 일행들과 함께 먹으며 5·18기념식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앞서 문 대통령은 광주 방문을 앞두고 "5·18기념식 후 5·18과 관련된 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랑궁회관의 주인 신지윤씨와 이황씨, 딸인 이반야씨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은 친필 족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랑궁회관의 주인 신지윤씨와 이황씨, 딸인 이반야씨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은 친필 족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랑궁회관은 유신 반대와 5·18민주화운동 등 각종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가족들이 운영해온 식당이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이정(69·여)씨의 동생이자 이연(56)씨의 형인 이황씨와 부인 신지윤(63·여)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 남매는 5·18 당시 옛 전남도청과 인근인 YWCA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집안의 맏형인 이강(70)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2년 고(故) 김남주 시인과 함께 유신체제를 비판한 인물이다. 이씨는 '전국 최초 반유신 선언문'인 '함성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식당의 바깥주인인 이황씨 역시 당시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8세의 나이에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화랑궁회관을 찾은 손님들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써준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적힌 족자를 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랑궁회관을 찾은 손님들이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써준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적힌 족자를 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 같은 집안 배경으로 인해 화랑궁회관은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에게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각종 시국사건과 관련한 회의나 기자회견이 이뤄진 장소기도 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자주 찾았던 이곳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의 방문이 잦았다.지난 1월에는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이곳에 들러 식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이 식당에는 200여 석 규모의 자리가 꽉 들어찰 정도로 손님이 늘어났다. 식당 좌석 중에서도 문 대통령이 직접 식사를 한 3호실이 특히 인기다. 토요일과 휴일에는 비빔밥 재료가 다 떨어져 손님을 못받을 정도다.

화랑궁회관 바깥주인인 이황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합죽선. 이씨가 친필로 쓴 부채에는 송나라 재상인 범중엄의 명언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화랑궁회관 바깥주인인 이황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합죽선. 이씨가 친필로 쓴 부채에는 송나라 재상인 범중엄의 명언이 적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당시 이황씨는 식당을 찾은 문 대통령에게 중국 북송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담긴 명문장을 이씨가 직접 쓴 합죽선을 선물했다.
이 부채에는 '先天下之憂而憂(천하가 우려하기 전에 먼저 걱정하고), 後天下之樂而樂(천하가 즐긴 이후에 즐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와 친필 사인이 적힌 족자를 이씨에게 건넸다.

식당 주인 신씨는 "대통령님이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소보다 손님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육회비빔밥을 먹기 위해 광주나 전남은 물론이고 서울과 경상도·충청도에서도 손님들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화랑궁회관 측에 건넨 친필 족자를 식당주인 신지윤씨와 딸인 이반야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화랑궁회관 측에 건넨 친필 족자를 식당주인 신지윤씨와 딸인 이반야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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