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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 없는 신태용호 분위기가 기적을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전주=김민규 기자

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전주=김민규 기자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훈련장 분위기는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들 못지 않게 밝고 화기애애하다. 웃을 땐 다 같이 배꼽을 쥐고 폭소를 터뜨린다. 대신 훈련에 돌입하면 눈빛이 날카롭게 바뀐다. 그 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경기보다 훈련 분위기가 더 치열하다. 우리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익살스런 친구들이 많아 팀 분위기가 좋지만, 훈련을 시작하면 웃음기가 싹 가신다"고 말했다.

21일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열린 대표팀 회복 훈련은 오랜만에 훈련장에서 웃음꽃이 떠나지 않은 날이었다. 기니전(20일·3-0승)을 거둔 직후라 훈련은 기니전에 나서지 않았거나 교체로 뛴 선수들만 참여했다. 기니전 선발 멤버 11명은 그라운드를 몇 바퀴 돈 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조깅을 하는 동안 대표팀 막내이자 최전방 공격수 조영욱이 신태용 감독에게 장난을 걸었다. 선수들 맨 앞에서 가이드러너로 나선 신 감독 바로 뒤에서 뛰는 자세를 흉내내 형들을 웃겼다. 분위기를 눈치 챈 신 감독이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핀 뒤 조영욱을 '현장 검거'했다. 유쾌한 응징이 이어졌다. 신 감독이 조영욱의 귀를 잡아당기며 30m 가까이 달려가자 함께 뛰던 선수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조영욱의 비명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퍼졌다. 훈련을 마친 뒤 진행한 인터뷰에서 조영욱은 "(감독 흉내는) 형들이 시켜서 한 건데, 정작 내가 감독님께 붙잡혔을 땐 아무도 나서지 않더라"며 억울해했다.

과거 어떤 대표팀에서도 볼 수 없던 장면이다. 2010년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당시 감독이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지만, 감독과 선수를 구별하는 선은 지켰다. 한국축구 역사를 돌이켜보면 상명하복식 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지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축구인들은 "선수들이 감독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신 감독 특유의 '형님 리더십'에 우려를 나타낸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여다 본 신태용호 분위기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웃을 때 웃고 땀 흘릴 때 땀 흘리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훈련 전후 분위기와 달리 전술과 세트피스를 가다듬는 비공개 훈련 도중에는 신 감독의 호통 소리가 그라운드 주변까지 울려퍼졌다. 주장 이상민은 "평소엔 웃다가 훈련장에서 고함을 치는 감독님에 대해서 변덕스런 성격이라 생각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늘 꿈꿔 온 지도자의 모습에 가깝다"고 했다. 수비수 우찬양은 "감독님과 여자친구 이야기로 대화를 나눴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들이 사생활까지 스스럼 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감독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이 임민혁(오른쪽 두 번째)의 득점 직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전주=김민규 기자

신태용 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이 임민혁(오른쪽 두 번째)의 득점 직후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전주=김민규 기자

신 감독이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면서도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는 비결은 전술적인 역량에 있다. 신 감독은 일단 전술 분석을 시작하면 무섭게 매달리는 스타일이다. 상대 경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장·단점과 공략포인트를 짚어낸다.

기니전 3-0 완승은 신 감독이 생소한 아프리카팀을 상대로 만든 전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흐름을 지배하며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후반에 투입한 임민혁이 골을 넣어 '교체 카드'도 성공을 거뒀다. 이상민은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평가전을 통해 깨달았다. 감독님과 서로를 믿고 재미있게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전주=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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