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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기업인 해외 진출이 곧 영토 확장”

중앙일보

입력

백성학(77) 영안모자 회장은 007 가방 크기의 오래된 가죽 가방을 늘 들고다닌다. 그 안에서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오려붙인 흑백 세계지도를 꺼냈다. 거기에 미국 댈러스, 독일 뒤셀도르프,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 등 영안모자의 30개 해외 법인 위치를 서로 다른 형광색으로 구분해 표시해놓았다. 깨알 같은 글씨로 업종과 규모도 정확하게 표시했다. “남한땅은 300억평인데 이 중 63%가 임야라 37%만 쓸 수 있어. 너무 좁아. 세계지도를 보면 가야할 곳이 넘쳐. 요즘 누가 전쟁해서 땅을 넓히나. 기업인들이 해외로 진출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넓혀야 해.”

30개 해외 법인의 위치와 사업 내용을 적어넣은 흑백 세계지도를 소개하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사진=심재우 뉴욕특파원

30개 해외 법인의 위치와 사업 내용을 적어넣은 흑백 세계지도를 소개하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사진=심재우 뉴욕특파원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또한 백성학 회장이 넓힌 영토 가운데 하나다. 2003년 브랜드만 남기고 죽어가던 토착기업 클라크를 750만 달러에 사들여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클라크는 1917년 창업자 유진 클라크가 지게차라는 제품을 처음 개발했다. 17일(현지시간) 지게차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렉싱턴 시내 중심가에서 열렸다. 백 회장은 전 세계 딜러 4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며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자”고 말해 참석자들을 열광시켰다.

모자, 지게차 등으로 해외 30개 법인 #망해가던 미 지게차 기업 클라크 되살려 #19세에 청계천에서 모자점 창업 ... 연간 1억개 파는 '모자왕' #현지 경영은 모두 현지인에게 맡겨

19살이던 1959년 청계천에서 영안모자점을 창업한 백 회장. 연간 1억개가 넘는 모자를 팔아 2억7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모자왕’으로 불린다. 그는 모자와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이는 지게차, 버스, 자동차 판매사업 등에 잇따라 진출해 성공방정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 회장은 “우리는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되 철저하게 현지화하는 데 강점을 지니고 있다”면서 “영안 모자사업의 노하우가 모든 사업에 접목돼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라크 지게차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백 회장을 만나 사업 얘기를 나눴다. 52년간의 세계화 노하우가 넘쳐 흘렀다. 그와의 대화를 재구성했다.

-영안모자는 그룹 대신 계열이라는 명칭을 쓴다.
“직원들이 영안모자 그룹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나한테 혼난다. 그룹을 붙이면 직원들이 겉멋이 들더라. 그리고 그룹이라고 까불면 재벌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우리가 해외에서 모자 만들어 한국에 팔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영세한 모자업체가 다 죽기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거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대로 세계시장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모자와 지게차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모자를 만드는 데 쉽지 않은 제조 노하우가 숨어있다. 그게 경쟁력이고, 판매의 동력이다. 그런 점에서 모자나 지게차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03년 클라크를 인수했을 때 만신창이나 마찬가지였다. 전 주인이 건물은 다 팔아먹고 창고 2개 빌려서 부품 재고를 놔뒀더라. 창원 클라크를 갖고 있던 산업은행이 주선해서 750만 달러를 주고 사긴 했지만 초창기 고생이 심했다. 이란에 몰래 기계를 팔아먹은 부사장 때문에 소송비가 370만 달러나 들었다. 이듬해에는 지게차에 다친 사람이 소송을 걸어 200만 달러를 주고 합의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게차 시장점유율이 80%까지 올라갔던 지게차 원조회사가 주인 잘못 만나 딜러들도 다 떠나고 아주 엉망이었다. 영안은 회사를 살려보려고 3년 이상 인내했다(지금까지 영안모자가 클라크에 투자한 돈이 1000억원 정도다). 한국 클라크를 인수해 미국에서 재생산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글로벌 운영체제를 갖췄다. 그러고 나니 돌아섰던 딜러들이 되돌아왔다. 지금 우리가 1만5000대 정도 팔면서 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0년 1만8000대, 2025년 3만대 판매 쉽게 갈 것이다. 틈새시장 진출용으로 소형 화물운송차인 딜리버리 트럭(0.8∼1.2t)을 개발중이다. 2025년까지 이걸 4만대 엮어주면 7만대 되겠더라. 그러면 매출 15억 달러는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다.”

클라크의 미국 렉싱턴 공장 내부. 사진=심재우 뉴욕특파원

클라크의 미국 렉싱턴 공장 내부. 사진=심재우 뉴욕특파원

-2015년 멕시코 공장 문을 닫고 미국으로 이전해 합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으면 좋아할 일이다.
“2011년 3월에 클라크 멕시코 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는데 영 전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2015년 말에 철수를 완료했다. 2016년 5월까지 멕시코 공장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해 통합했다. 현재 미국 렉싱턴 공장에서 4000대 정도로 생산을 늘리면서 다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랬더니 미국 정치인들이 클라크 회생 스토리를 롤모델로 삼더라. 나도 미국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제조업이 망하면 회생시키기 힘들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얘기했다. 그래도 미국에는 정보기술(IT) 기업 뿐만 아니라 클라크처럼 100년 된 보수적인 기업이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너무 한쪽으로 몰고가면 안 된다. 밥상을 차리려면 밥을 짓는 사람도 있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밥만 먹으려고 한다. 골고루 섞여야 한다. 30대 대기업 뿐만아니라 중소기업·중견기업의 제조 기반이 버티고 서있을 만한 토대가 있어야 한다. 어묵장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IT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묵으로 세계시장을 뚫어야 한다.”

-클라크 본사에 한국 사람이 안 보인다.
“내 원칙은 현지인에게 모두 맡기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성공하려면 그 지역문화를 아는 사람을 교육시켜서 맡겨야 한다. 돈 관리하는 사람도 현지인이다. 한국인이 주인이랍시고 현지에서 으스대기 시작하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세 가지를 강조한다. 허위 보고 하지 말라, 비자금 만들지 말라, 정리정돈 잘하자 등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실수했다고 쫓겨나는 사람 없다. 오래 같이 가는 게 원칙이다.”

-클라크 미국 공장의 생산성은 어떤가. 인건비가 비싸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전 세계 영안모자 계열 근로자의 임금을 비교해봤더니 한국 인건비가 가장 비쌌다. 창원 클라크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생산직 근로자의 연봉을 100%로 봤을때 미국 생산직은 70%에 불과했다. 중국은 18%였다. 급여 이외에 복리후생으로 챙겨줄 게 많아서다. 이게 다 3∼4%의 귀족노조 때문이다. 하도급직원, 비정규직 등 4명의 고혈을 짜내 귀족노조 정규직 직원 한 명을 잘살게 만드는 구조다. 조만간 중국이 조선과 중공업, 자동차까지 싹 쓸어담으면 어떻게 할건가.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쉬는 날도 너무 많다. 지난해 근무일수를 분석해봤더니 창원공장은 243일이었고, 미국은 252일이었다. 한국에서 납기를 맞추려면 시간외근무 수당을 주고 잔업을 해야 해서 생산단가가 높아진다.”

-앞으로도 계열사 상장 계획은.
“영안모자 계열은 가족기업이다. 내 원칙이다. 경인방송을 제외하고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세 아들이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줘서 싸울 일이 없다. 큰 아들 백정수 부회장이 계열 전체를, 작은 아들 백병수 부회장이 버스를, 막내 아들 백병수 부회장이 지게차 사업 등을 맡는다. 영안모자 창립 6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계획이다. 앞으로는 세계에 다니면서 배운 52년 노하우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중소기업에 봉사 차원에서 컨설팅해주는 일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금만 신경 쓰면 바닥을 치고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 많다.”

렉싱턴(미국 켄터키주)=심재우 뉴욕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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