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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유가족 부둥켜 안은 문재인 대통령...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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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5ㆍ18 유족인 김소형(37)씨의 사연을 듣고서다.

문 대통령, 유가족 편지에 눈물 흘려 #"광주의 진실, 외면한 수 없는 분노" #여야 정치인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제창하지 않아 #

소형씨는 1980년 5월18일 태어난 '5·18 둥이'다. 김씨의 아버지 재평(당시 29세)씨는 전남 완도 수협에 일하다 소형씨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왔다 계엄군이 쏜 총탄을 맞고 22일 숨졌다. 김씨는 이날 편지에서 제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행복하게 살아계셨을 텐데"라며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의 모든 아버지들이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갈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 주셨음을 사랑합니다. 아버지"라며 눈물을 쏟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앞자리에서 그 장면을 보던 문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김씨가 편지를 읽고 무대에서 퇴장하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서 김씨를 따라가 안아줬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께서 김씨에게 '울지 마라, 가서 같이 아빠 묘역에 함께 참배하러 가자'고 하신 걸로 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이 끝난 후 희생자 묘소를 둘러보며 김재평씨의 묘역도 들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연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유가족을 안아주고 자리로 돌아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사연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유가족을 안아주고 자리로 돌아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날 기념식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ㆍ18민주묘지에서 거행됐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각 부처 인사와 정치인,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4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다”며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고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 등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는 동안 시민들은 23회에 걸쳐 박수를 보냈다.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날 기념식에서는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 전원이 일어서 두 손을 맞잡고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문 대통령의 왼편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오른편에는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씨가 자리잡았다.

여야 정치인들도 서로 두 손을 맞잡았다. 이날 기념식에는 추미애 당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 뿐 아니라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제창에 참여했다. 정 원내대표와 이현재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정 대표는 기념식 후 기자들을 만나 “제창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부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창이 끝난 후 추 대표는 “속에 있는 어떤 막힌 것이 훅 나오는 느낌”이라고 했고, 우원식 원내대표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기념식을 통해 구현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 감동”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진보ㆍ보수를 떠나서 이게 정상적인 나라”라고 말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새로운 희망의 세상이 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일반인석에서 기념식을 지켜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참 기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식이 끝난 후 민주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식이 끝난 후 민주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날 문 대통령은 차를 타고 기념식장 근처까지 갔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민주의 문’ 앞에서 내려 시민들 사이를 지나 기념식장에 입장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방명록에는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고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 외에도 지난 대선 기간 중 안 전 대표를 지지했던 가수 전인권씨가 부른 상록수도 따라 불렀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을 마친 후 민주 묘역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금남로에 있는 비빔밥집에서 5.18 관련 단체 회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날 기념식은 53분간 진행됐다. 지난해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한 박승춘 당시 보훈처장이 기념식장에서 쫒겨나는 등 소동 끝에 20분 만에 끝났다.

광주=박유미ㆍ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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