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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 차림에 테이크아웃 잔 … 대통령 이런 모습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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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함께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상의를 벗을 때 청와대 직원이 이를 도우려 하자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며 직접 옷을 벗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함께한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상의를 벗을 때 청와대 직원이 이를 도우려 하자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며 직접 옷을 벗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참모들과 걷거나 탁자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날씨가 좋을 때면 로즈가든에서 참모들과 함께 앉아 있다가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햇볕을 즐기곤 했다.

문 대통령, 신임 참모들과 오찬 뒤 #경내 산책, 통나무형 의자 앉아 담소 #집무는 주로 비서동인 위민관서 #수석들 아닌 비서관과 식사도 이례적 #대통령 일정도 페북 등에 미리 공개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 단톡방 가입

그런 미국과 달리 엄숙주의 문화가 짙은 청와대에서 11일 다소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청와대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오찬을 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과 함께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정장 상의는 벗어 둔 채 와이셔츠 차림으로였다. 손에는 사기 찻잔이 아닌 흰색 바탕의 테이크아웃(Take out) 잔이 들려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한 뒤 삼삼오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여느 직장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과 참모들이 함께 걷다가 앉은 곳은 등받이가 없는 통나무형 의자였다. 평소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한 후 청와대 소공원에서 차담회를 갖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 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한 후 청와대 소공원에서 차담회를 갖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기 전에 차담회를 하곤 했다. 하지만 장소는 대부분 본관 회의실 옆의 실내 공간이었다. 실외로 나오지 않은 만큼 테이크아웃 잔을 이용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상당수 장관이나 수석들은 사기 찻잔을 받침 위에 올려서 든 채로 박 전 대통령 발언을 듣곤 했다.

문 대통령이 산책과 차담회에 앞서 진행한 오찬도 정치권에선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실무 공무원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수석비서관(차관급)이 아닌 비서관(1급)과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윤영찬 국민소통(옛 홍보)·조현옥 인사수석 외에 이정도 총무비서관,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일정총괄 팀장과 함께 오찬을 했다. 문 대통령 맞은편에는 이 비서관이 앉았다. 이후 산책과 차담회 역시 비서관급인 권혁기 춘추관장이 함께했다.

취임 첫날부터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청와대는 실제로 이전 청와대와 달리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는 동안에도 ‘열린 청와대’를 지향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례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출입기자들의 단체 카카오톡방에 가입했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주로 사용한 청와대 본관 집무실 대신 비서진과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인 위민관 집무실을 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위민관은 3개 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한 곳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위민관 집무실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만들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격식을 차리는 행사를 제외하고는 위민관을 쓰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백악관 웨스트 윙(west wing,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 사무실이 있는 공간)에서 대통령과 참모진이 쉽게 소통하는 미국처럼 청와대 분위기를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다.

청와대 출입기자단 단톡방에 가입한 윤영찬 수석.

청와대 출입기자단 단톡방에 가입한 윤영찬 수석.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일정을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리 공개하기로 했다. 대국민 소통의 일환이다. 실제 취임 첫날도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날 모두 공개했다. 문 대통령의 일정이 앞으로 모두 공개될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경내 일정은 상관없지만 외부 일정의 경우 미리 공개될 시 경호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경호를 약하게 해달라”고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홍은동 자택에서 출근하며 동네 주민들과 ‘셀카’도 찍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리가 끝나는 며칠 뒤 관저로 이사한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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