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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하나를 보면 열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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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장훈한국외대 영어학부 4학년

김장훈한국외대 영어학부 4학년

“글씨를 예쁘게 써야 해. 글씨에는 그 사람 성격이 드러나는 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거라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지겹도록 이 말을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손꼽히는 악필가다. 글씨 하나로 열을 아시는 분이 본인의 배우자를 고를 때만큼은 이성을 놓으셨던 걸까. 어쨌든 글씨는 어디 가서 욕먹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쓰는 편이다. 한 번은 여자친구가 내 글씨가 탐난다며 내 글씨를 따라 써 보기도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머니가 정말 고맙다.

하지만 글씨를 잘 써야 할 이유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기 때문’이란 논리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지극히 단선적이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열 가지 모습 중에서 한 가지만 보고 나머지 아홉 가지를 예단해도 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상대방의 여러 모습을 두루 살피기보다는 나의 독선적인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이기적인 논리이기도 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니) 글씨를 잘 써야 한다, 옷은 단정히 입어야 한다, 선배들에게는 깍듯해야 한다” 등등. 나는 이 말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그 부족함에도 넌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기 위해 쓰이는 모습을 보고 들은 기억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나 폭력적인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무비판적으로 수용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사고방식으로 연애를 하거나 친구를 대하면 매우 위험하다. 한 가지 매력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다가 거기에 질리면 그 사람의 모든 게 싫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게 한번 실망을 안겼다고 해서 친구의 모든 장점을 무시하고 한평생 등을 지기도 한다. 대선후보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흔히 ‘하나만 보고 열을 알았다’고 착각하곤 한다. ‘저 후보는 토론을 못하고 정책 공약도 별로지만 그래도 경력이 좋잖아’라며 지지를 결심한다. 그러다 그 하나에 실망하면 누구보다 격렬한 ‘안티’가 된다.

하지만 하나는 하나일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를 보고도 열을 알고 싶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열 가지 모두 내 맘에 쏙 드는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보의 인물 됨됨이, 정책, 공약, 경력 등 후보자의 다양한 면을 두루 살펴 다른 후보와 견줘 봐야 한다. 그래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아니면 ‘난 하나만 본다’는 우직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도 좋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알았다는 착각에만 빠지지 않으면 된다. 곧 투표일이다.

김장훈 한국외대 영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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