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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공약도 홍보 못하는 후보들 답답”…대학생들의 '대신 토론'

중앙일보

입력

“호전적인 북한의 태도가 여전하다. 군 통수권자가 될 후보가 적을 적이라 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됐다.” (고려대 법학과 곽용규씨,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할)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면서 통일ㆍ외교 책임자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다.” (성신여대 정치학과 이수빈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할)

고려대(오른쪽)와 성신여대의 토론 동아리 회원들이 각각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역할을 맡아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고려대(오른쪽)와 성신여대의 토론 동아리 회원들이 각각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역할을 맡아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에서 논란이 됐던 ‘주적’ 논쟁에 대한 대학생들의 발언이다.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이 열린 2일 서울 고려대에선 대학생들 간의 토론이 있었다. 고려대 토론 동아리 ‘코기토’ 학생 3명은 안철수 후보를, 성신여대 토론 동아리 ‘토달래’ 학생 3명은 문재인 후보 역할을 맡았다. 이른바 롤플레잉(role-playing) 대선 토론이다. 학생들은 3주 전부터 각 후보의 공약과 관련 기사를 꼼꼼히 챙긴 뒤 이를 토대로 토론에 임했다. 준비를 시작할 당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강 구도가 뚜렷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등 다른 이들은 제외했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은 TV토론 방식을 그대로 따와 ‘기조연설→시간 총량제 자유토론→마무리 발언’ 순으로 진행됐다. 상대 후보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없었다.

문 후보 역할을 맡은 성신여대 학생들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한국 건너뛰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미국과는 외교ㆍ국방장관 전략 대화를 제도화하고, 한ㆍ중ㆍ일 관계는 ‘동북아 더하기 책임공동체’를 구축해 풀겠다”고 말했다. “일자리 마련 공약에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안 후보 역할의 고려대 학생은 “사업화를 위한 연구개발(R&D)은 ‘무이자 기술보증부 대출’로 촉진하고, ‘스타트업 공제제도’를 통해 창업 실패자들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언뜻 낯설게 들리지만 각 후보의 공약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같은 시각, 실제 대선 TV토론에서는 안 후보와 문 후보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도왔던 전직 당대표가 모두 당을 뛰쳐나왔다. 계파패권 때문이다”고 공격하자 문 후보는 “그렇게 만든 게 안 후보다”고 받아쳤고, 안 후보가 재차 “문 후보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대학생 토론회에선 각 후보의 장점을 살린 공약 홍보도 눈길을 끌었다. 고려대생들은 “4차 산업혁명, 프로그래머 안철수가 해내겠다. 학제 개편, 교수 안철수가 해내겠다. 일자리 문제 해결, CEO 안철수가 해내겠다”고 말해 동아리회원 30여 명의 박수를 받았다. 성신여대생들은 문 후보가 특전사 출신임을 부각하며 “북핵 미사일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전략사령부’(가칭) 설치를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난 뒤 학생들은 “차라리 후보들 대신 우리가 토론에 나가는 게 낫겠다”고 입을 모았다. 고려대 박장완(19ㆍ산업공학)씨는 “유권자들이 잘 모르는 정책 홍보는 못 하고, ‘MB 아바타’(안 후보), ‘고구마’(문 후보) 논란만 자초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김영현(21ㆍ법학과)씨는 “문 후보 공약집에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견제 방안이 자세히 나와있지만 정작 이런 내용들을 널리 알리지 못했다”고 지적했고, 고려대 곽용규씨도 “20~30대 유권자를 공략할 청년 주거문제 공약이 잘 마련돼 있는데 이를 알리지 못한 것은 안 후보도 마찬가지다”고 거들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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