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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바른정당....대선 구도에 변화 있다?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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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수의 길’을 찾겠다던 바른정당이 2일 사실상 붕괴됐다. 지난 1월 24일 창당한 뒤 99일 만에 13명의 의원이 집단 탈당 후 자유한국당 복당을 선언하면서다.

2일 권성동ㆍ김성태ㆍ김학용ㆍ장제원ㆍ황영철 의원 등 탈당 의원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고전하는 상황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보수층 지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자 이들은 지역구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홍 후보가 탄핵 국면에서 흩어졌던 보수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으면서 “좌파에 정권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지역구 행사 초청 대상에도 배제되는 등 냉랭한 민심에 당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4일 바른정당이 창당됐다. 이 자리에서 바른정당은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죄를 했다. 김무성 의원 은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통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지난 1월 24일 바른정당이 창당됐다. 이 자리에서 바른정당은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죄를 했다. 김무성 의원 은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통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들의 집단 복당 추진은 당분간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바른정당에 남은 의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듣는 이들에 대해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탄핵 주도 세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공개적 비판에 나섰다.  한선교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들은 자유한국당에 남아있는 의원들을 폐족으로 매도하고, (한국당이) 없어져야 할 당으로 외쳤던 사람들”이라며 “만약 그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일괄복당이 이뤄지면 저는 한국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도 입장 자료를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하는 모습을 국민은 인정할 수 없다. ‘벼룩에도 낮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의 정치 도의는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당이 하수처리장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내부에서 반발이 커지자 한국당은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바른정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은 현재 한국당에 입당원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입당원서를 제출하더라도 당헌ㆍ당규에 따라 절차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이 “해당(害黨) 행위를 하고 나간 의원들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받아줄 수는 없다”고 반발한 데 따른 조치다.

한국당은 바른정당으로 탈당했던 의원들의 지역구에 새 원외당협위원장들을 임명했다. 이들이 이미 해당 의원들의 지역구에서 활동하고 있기때문에 한국당에 복당하려는 바른정당 탈당파는 당분간 무소속 신분으로 홍 후보 지지활동을 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선 바른정당의 집단 탈당이 대선 막판 구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하고 있다. 홍 후보가 탄력을 받고 보수층 재결집에 나서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추격할 동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국당은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지지 성향을 숨기고 있던 ‘샤이 보수(보수 성향의 숨은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홍준표 후보도 이날 기자들에게 “보수 대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들어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윤종빈 명지대(정치학) 교수는 “조직력이 있는 현역 의원이 투입되는 만큼 각 지역구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선거 전체의 흐름을 바꿀 파괴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집단 탈당을 두고 "대선 이후 보수 진영의 패권 경쟁이 벌써부터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국회 지형은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되기 때문에 입법부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을 할 수가 없고, 그런 과정에서 정계개편이 진행되면 범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탈당파에 대해 홍준표 후보 측은 “곧바로 복당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하는 반면 친박계는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대선 이후 당권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승민 후보는 거듭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유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집단 탈당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굉장히 어렵고 힘든 길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심정도 이해하고, 제가 부덕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일화는 없고, 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자필로 쓴 ‘끝까지 간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유 후보는 이날은 ‘나 유승민은 끝까지 간다’는 목소리를 담은 동영상을 게시했다.

허진·백민경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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