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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비장의 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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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핵무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1945년 사상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는 원자탄이다. 우라늄235 64㎏의 핵분열 에너지로 TNT 15킬로t의 폭발력을 냈다. 며칠 뒤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Fat Man)’은 우라늄 대신 플루토늄239를 이용했다. 이런 폭탄은 방사능을 많이 내뿜는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다. 1950년대 개발된 수소폭탄은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을 이용한다. 태양 중심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인공적으로 재현한다. 우라늄 핵폭탄을 터뜨려 얻은 열과 압력으로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며 파괴력을 얻는다. 상대적으로 방사능이 적어 ‘깨끗한 폭탄’으로 불린다.

중성자탄은 작지만 치명적인 수소폭탄이다. 폭발력은 ‘리틀 보이’의 10% 이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중성자를 대량으로 발생시킨다. 건물이나 탱크는 멀쩡해도 그 안의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생산 결정을 공개하면서 그 존재가 공식 확인됐다.

중성자탄의 반대 효과를 내는 게 전자기파동(EMP) 핵폭탄이다. 인명 살상보다 전자장비 파괴가 목표다. 폭발 때 나온 감마선이 주변의 모든 전자 회로를 태운다. 휴대전화·TV 같은 전자기기는 물론 변압기와 전화교환기까지 고장낸다. 컴퓨터로 엔진을 제어하는 요즘 차들도 멈춰선다. 죽거나 다치지 않으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끊긴 전기와 멈춰선 교통수단을 복구하려면 수년이 걸린다. 식량 공급이 사실상 중단돼 많은 이가 굶주리게 된다. 사람들을 천천히 죽이는 무서운 무기다. 성층권에서 이를 터뜨리면 웬만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가 지난 주말 북한의 EMP 핵폭탄 개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상공에서 이게 터지면 국민의 90%까지 사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집착증을 보면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북한은 10여 년 만에 원자탄을 개발하고 수소탄까지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미사일을 수직 발사해 대기권 재진입 능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EMP탄 개발에 필요한 전제조건들을 갖춰나가고 있다. 언젠가 김정은이 비장의 무기라며 공개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미국은 물론 중국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다. 방어용이라며 핵무기 몇 개 갖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김정은 비장의 무기는 어쩌면 가장 확실한 자멸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