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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 보릿고개인데 … 잠자는 관광지원금 65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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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금지 여파로 썰렁한 인천공항의 중국 항공사 출국장. [중앙포토]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금지 여파로 썰렁한 인천공항의 중국 항공사 출국장. [중앙포토]

200실 규모의 관광호텔을 임대해 운영하는 중국 전담 여행사 대표 A씨는 지난달 한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특례보증을 신청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 보복으로 3월 이후 중국인 단체 여행객이 거의 끊기면서 호텔을 임시휴업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담보 요구 등 조건 까다로워 #여행사 손에 쥔 건 극히 일부 #실효 없는 뻥튀기 대책 되풀이 #9월 동남아인 무비자 시행 #“제주 국한 말고 전국 확대를”

문화체육관광부의 저금리 특별융자가 있었지만 심사까지 수개월이 걸려 급한 김에 재단을 찾은 것. 하지만 재단은 신청한 1억원만 가능하다고 하더니 그마저 한 달째 심사 중이다. A씨는 “곤경에 처한 관광업계를 돕겠다며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많이 내놨지만 정작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광산업 지원 정책이 겉돌고 있다. 지원액을 뻥튀기하는가 하면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난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문체부 등 정부 부처가 발표한 ‘범정부 관광시장 활성화 방안’도 그중 하나다.

당시 문체부가 관광개발진흥기금 특별융자 1300억원(추후 2260억원으로 증액) 등 모두 651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확인한 결과 3월 22일 이후 한 달여 동안 여행업에 지원된 중기청 경영안정자금은 한 건도 없었다. 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은 438개 업체에 118억원이 지원됐지만 이 중 여행업은 두 곳 1억원에 불과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대부분 음식점에 지원됐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은 77개 업체에 143억원이 집행됐지만 이 중 여행사는 24개 업체 44억원에 그쳤다.

문체부가 발표한 2260억원 특별융자도 업체들에 배정한 금액일 뿐 실제 대출액은 아니다. 대출 업무를 맡은 시중은행이 심사하면 실제 대출액은 이보다 크게 줄어든다.

문체부 담당자는 “통상 특별 융자의 실제 집행률은 배정액의 60% 선”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출액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배정액을 발표해 마치 대출액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문체부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에도 여행업계에 특별융자 대책을 내놓았다. 이때도 배정액에서 실제로 대출된 금액은 59%였다.

물론 정부 돈이라고 해서 대출 자격이 안 되는 이들에게 마구잡이로 빌려줘선 안 된다. 문제는 실효성이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같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문체부가 자꾸 숫자에 집착하는 단기 대책을 내놓고 있다. 관광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장기 대책도 함께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여행 시장 다변화’를 중장기 대책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중국에 편중하지 말고 동남아를 공략하자는 캠페인성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시장 과열 현상이 나타나는 등 벌써부터 역효과가 나고 있다. 여행객 유치를 위해 최근 동남아를 다녀온 여행사 대표 B씨는 “동남아도 이미 덤핑이 만연해 있다”며 “이러다가 중국 시장처럼 될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여행업계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동남아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다. 지난 2013년 일본은 센카쿠열도 분쟁으로 중국이 일본행 금지령을 내리자 ‘동남아 무비자’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제주도의 경우 오는 9월부터 동남아 관광객 무비자 제도가 시행된다. 이는 제주도에 오는 동남아 단체관광객에게 환승 무비자 120시간(5일)을 주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 단체관광객만이 무비자 혜택을 받았으나 정부가 유커 급감 이후 대상을 확대했다. 여행업계에선 한시적이라 할지라도 이를 서울 등지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관 합동으로 인센티브 관광을 유치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책으로 거론된다. 제주도·제주관광공사 등 관광 유관기관 합동 관광마케팅단은 지난달 27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관광설명회에서 현지 주력 5개 여행사와 제주 인센티브 관광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연중 100여 회에 걸쳐 베트남 기업 인센티브 관광객 5000여 명이 제주도를 찾을 전망이다.

홍영기 제주도 관광정책과장은 “베트남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신규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발굴,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제주=최충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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