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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천港 '철조망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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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기도 파주시 교하농협 운정지점 권총 강도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총기 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특히 교하농협 권총 강도범의 경우 범행에 사용할 총기를 구하기 위해 올 들어 필리핀을 다섯차례나 오가며 지난 3월과 4월 두 차례 권총 2정과 실탄 27발을 부산 감천항을 통해 밀반입했지만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범인은 필리핀 현지에서 권총 주문비 1만페소(23만원)를 지불하고 귀국, 지난 4월 감천항 보세구역 철조망을 통해 필리핀 선원에게 배달비 1천달러(1백30만원)를 건넨 뒤 권총과 실탄을 넘겨받았다.

범인은 경찰에서 "영어를 할 줄 몰라 손짓 발짓으로 권총을 주문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권총사격 연습도 했다"고 진술했다.

범인은 지난 3월에도 감천항을 통해 주문한 권총을 전달받았으나 격발이 되지 않자 다시 필리핀으로 출국해 2차 주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항만을 통해 총기류 밀반입 사실이 처음 드러난 감천항은 벌크화물과 수산물 등을 실은 러시아와 동남아 어선 출입이 잦아 밀수 등 범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주택가와 인접한데다 항만 경계를 구분하는 보안 철조망 높이가 낮아 부두 철조망 위로 밀수품을 밖으로 던지더라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내 총기류 관리.단속망이 허술한 틈을 타 총기 범죄나 유출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5일 낮 12시30분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소래포구 갯벌에서 朴모(75.광명시 하안동)씨가 45구경 레밍톤 권총 1정과 실탄 83발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이 권총이 유출된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대공 용의점이 없어 일단 군부대로 넘겼다.

이에 앞서 지난달 11일 대구에서 중소기업 사장이 권총 강도에게 습격당했으며, 지난 4월 17일에는 부산 도심 아파트에서 러시아 마피아 두목이 같은 러시아인이 쏜 권총에 맞아 숨졌다. 같은 달 22일 서울 우면산 기슭에선 30대 남자가 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보이는 스페인제 권총으로 자살했다.

특히 지난달 대구 권총 강도 사건 용의자로 체포됐던 30대 남자 집에서는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 2정과 공기소총.가스총.석궁.폭약.실탄 21발이 발견돼 무기고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총포 등 단속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 남자는 "청계천시장에서 권총 두 자루를 샀다"고 진술해 경찰이 청계천 일대 일제 검색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이 총기류 유통.반입 루트가 군부대에서 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 범죄조직과 필리핀 등 외국 화물선.인터넷 사이트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는데도 당국의 검색망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998년 14건에 불과하던 민간인들의 총기 사용 범죄는 ▶99년 21건▶2000년 24건▶2001년 36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지난달까지 불법 총기류 소지 사범 1백76명을 적발, 지난해 1백67명을 넘어섰으나 정작 밀반입 사범은 단 한명 검거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감천항 등 국내 항만은 총기 밀반입을 색출할 X-레이 등 첨단장비와 인력이 크게 부족해 휴대용 금속 탐지봉 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특송화물과는 달리 이삿짐 같은 탁송화물의 경우 무작위 검사만 받도록 돼 있어 총기를 숨겨 들여오면 사실상 적발하기 어렵다.

전익진.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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