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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수상한 표절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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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정치부 차장

최민우정치부 차장

검사 세계를 다룬 영화 ‘더 킹’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이 사건, 지금 터뜨리면 안 돼. 사건도 김치처럼 잘 묵혔다가 제대로 익었을 때 터뜨려야 한다고.”

지금이 그 최적의 타이밍일까. 대선 정국에 느닷없이 가수 전인권의 자작곡 ‘걱정 말아요 그대’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블랙푀스’라는 독일 밴드가 1970년대 초 발표한 노래와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26일 언론까지 가세하며 삽시간에 공론화됐다.

독일 노래를 실제 들어보니 코드 진행과 후렴구 등에서 엇비슷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도 “유사성이 있다는 데 일부 동의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임씨는 “표절은 친고죄다. 원곡자가 아닌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도 평론한 지 얼추 30여 년 되는데 ‘블랙푀스’는 처음 들었다. 한국 네티즌, 정말 못 말린다”고 했다.

논란이 커진 데엔 전씨의 정치적 성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철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걱정말아요 그대’는 촛불 정국의 테마송처럼 불렸고, 전씨도 광화문광장 무대에 섰다. 당연히 전씨가 적폐청산을 외쳐온 문재인 후보를 응원하리라 기대했는데, 별안간 안철수를 치켜세우니 ‘문빠’(문재인 열혈 지지층) 입장에선 배신감이 들었을 터다. 전씨는 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안철수 지지 선언한) 그날부터 ‘뽕쟁이 XX, 노래나 해’라는 쪽지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그 연장선에서 폭로도 이어진 거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나친 음모론일 수 있다. 왜 문빠만 걸고넘어지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말아요 그대’는 2004년 처음 발표됐다. 이후 여러 번 화제가 됐고, 특히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삽입되며 ‘국민위로송’으로 등극했다. 표절을 지적하고자 했다면 기회가 숱하게 있었다는 얘기다. 전씨가 정치적 커밍아웃을, 그것도 문빠가 아니라 ‘안빠’로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오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표절을 전면 부인한 전씨는 “정치적 견해를 표했다가 신상털릴까 겁난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며 “인터넷은 바깥세상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그토록 공분했던 건 민주주의 원리인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제도의 억압’이 아닌, 정의로 포장된 ‘다수의 폭력’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이 더 끔찍한지는 지나온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