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트럼프의 세제개편안...부족한 세수 메꾸기가 관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내놓은 세제개편안은 취임 100일을 사흘 앞두고 서둘러 발표된 만큼 완전한 형태의 법안이 아니라 아우트라인만 미리 공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기업 성향의 세제개편이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가 대표적이다. 법인세를 현행 35% 이상에서 15%로 인하할 경우 앞으로 10년간 2조2000억 달러(약 2480조원)의 세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트럼프가 세수 감소를 무릅쓰고 법인세의 대폭 삭감에 나선 것은 줄어든 세금 부담만큼 기업들에 일자리를 창출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미국 기업이 해외에 쌓아둔 2조6000억 달러의 수익을 미국으로 들여오도록 하기 위한 당근도 제시했다. 해외소득에 대해서는 현지에서 세금을 내고 자국 세금은 면제해 주는 속지세 체계로 전환하면서, 한 차례 송환세를 인하해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산층을 위한 세금감면 혜택도 눈에 띈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5%로 내리고, 과세 구간도 7단계에서 10%, 25%, 35% 등 3단계로 단순화했다. 그러면서 개인별 과세대상 소득에서 공제해 주는 액수를 2배로 확대한다. 또 자본소득세의 최고세율은 23.8%에서 20%로 하향조정하고, 재산세는 폐지한다. '사망세'로 불리며 40%의 세율이 부과되는 상속세도 없애기로 했다.
고소득층의 세금을 면제해 주는 각종 공제 제도는 없앴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2조3000억 달러의 재정수입을 확보했다. 그동안 상위 1%의 초고소득층과 상위 2∼5% 고소득층이 공제제도 수혜 대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낸다’는 논란이 있었다.
자영업자, 헤지펀드, 부동산개발업체, 법무법인 같은 기업의 이익은 소유주의 개인 소득으로 분류돼 법인세가 아닌 개인소득세를 낸다. 이런 기업에 적용되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39.6%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전망이어서 '셀프 감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경조정세는 세제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월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와 수입업체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에 따른 세수 결손과 재정적자 확대가 큰 문제여서 앞으로 의회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일단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앞으로 10년간 재정적자를 늘리지 않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야 세제개편안이 일반 법안이 아니라 ‘예산조정안’의 형태로 마련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원 통과에 필요한 의석수를 60명이 아닌 51명으로 줄일 수 있다. 의결정족수가 51명이면 공화당 단독처리가 가능해진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나중에 이 때문에 세수가 줄어들면 법안은 10년 후 소멸한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이 재정적자가 늘어나면서 10년 뒤 효력이 자동 정지된 바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