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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 마린 르펜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대선에서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려온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49) 후보.

프랑스 대선에서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려온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49) 후보.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마린 르펜(48) 국민전선 대표의 인생에는 아버지 장마리(88) 전 국민전선 대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르펜은 극우 정당을 설립하고 이끈 아버지로 인해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성인이 돼 정치에 투신한 뒤에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망령 사이에서 사투를 벌였다.

극우정당 설립한 아버지 탓에 따돌림·테러…불우한 유년기 #르펜家 측근 "르펜에겐 '세상은 우리의 적'이라는 인식 있어" #성인되자 당 향한 인식 개선에 투신…아버지 당에서 내쫓기도

르펜은 1968년 프랑스 파리 북서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뇌이쉬르센에서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르펜은 4살 때 국민전선을 창당한 아버지 장마리로 인해 어려서부터 친구들로부터 '파시스트의 딸'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자랐다. 8살 때엔 장마리를 암살하려던 세력이 르펜의 아파트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건물을 폭파시키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공격을 받은 뒤 르펜 일가는 파리를 떠나 외곽 몽트르투로 이사해야 했다.

정치에 여념이 없었던 장마리는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다. 장마리 부부는 르펜이 16살 때 이혼했다. 르펜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간 뒤 르펜과 연락조차 끊었다. 그러는 사이 장마리의 이혼 소식은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심지어 어머니의 벌거벗은 사진이 지면에 실리는 일까지 있었다. 이 일도 르펜의 트라우마 가운데 하나가 됐다.

장마리 일가와 가까운 장프랑수아 투제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르펜은 어머니가 떠난 뒤 더 강해졌고, 아버지와 더 가까워졌다"며 "이 비극을 겪고 학교에서 따돌림까지 당하면서 르펜에겐 '세상은 우리의 적'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르펜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 2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도 얻었지만 르펜의 삶은 아버지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르펜은 1997년 국민전선 지지자와 첫 결혼을 했고, 이듬해엔 6년 간 계속해오던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국민전선에 입당했다. 이후 국민전선 집행위원과 부대표를 거쳐 201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직에 올랐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 투표하는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 대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 투표하는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 대표.

유년 시절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 고통받았던 르펜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전선을 향한 대중의 인식 개선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르펜은 당의 이미지 개선에 열중했다.

르펜은 인종 차별 발언을 일삼고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며 당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장마리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당 내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억제하고 사형제 부활을 명시한 당 강령을 폐기하는 등 온건한 노선을 취하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장마리가 반발하자 르펜은 설전 끝에 2015년 그를 당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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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의 노력으로 국민전선은 젊은층에서 크게 약진하며 세력을 넓혔다. 그해 국민전선은 르펜의 지휘 하에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위를 달성하고 창당 최초로 상원의원을 배출하는 등 명실상부 프랑스의 주요 정당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대선 결선투표는 장마리와 결별을 선언한 르펜이 맞이한 첫 시험대다. 장마리는 2002년 국민전선 창당 이후 최초로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 맞서 득표율(17.8%)를 기록했다. 르펜이 아버지의 득표율을 넘겨 국민전선에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아니면 그보다 더한 이변을 일으켜 대통령직까지 넘볼 수 있을지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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