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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도 산업과 문화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만화에도 산업과 문화 통합정책이 필요하다

박인하 교수

박인하 교수

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업무상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자주 접속한다.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더니 크롬 브라우저에서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며 접속을 차단하고 있었다.

 안전하지 않은 공공기관이라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의 문체부 처지를 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본의든 아니든, 문화예술의 자율적 발전을 차별 없이 지원해야 함에도 편 가르기를 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체부 전체가 마치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받아들여지는 지금의 모습도 위험하다. 한 나라의 문화 행정의 일관성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원기관에 입주한 문화콘텐트 스타트업 회사들의 운명이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다른 어떤 정부기관보다 문체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해외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정부와 업계의 ‘2인 3각’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도 사실이다.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에 문화산업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문체부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된 1994년부터다. 이를 시작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많은 분야의 정책기조가 ‘규제’에서 ‘지원’으로 바뀌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분야는 정부와 업계,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국민홍보를 위해 행사를 기획·개최하고, 시상식을 마련하고, 지원기관을 설립했다. 행정이 먼저 시작하고, 이후 그것이 성숙하면 민간에 이양하곤 했다. 많은 지원 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힘을 얻고, 연구 사업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는 표현의 자유와 생태계의 다양성이 문화콘텐트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업계와 보조를 맞추려 노력했다.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트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도 문체부의 적극적 행정지원이 있었다. 작은 스타트업인 ‘레진’을 지원한 것도 문체부였다. ‘레진’의 성공과 함께 유료 웹툰 플랫폼시장은 활발하게 커나갔다. 2013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여 편의 웹툰을 청소년들에 유해한 작품으로 심의결정을 한 적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새롭게 정착하기 시작한 만화시장을 규제의 틀 안에서 구겨 넣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만화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만화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제법 일사분란하게 성명서를 발표하고, 세미나를 개최하고, 연구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만화인들과 소통하고 문제를 조율하려고 노력한 곳 역시 문체부였다. 그 결과 한국만화가협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업무협약을 맺어 자율규제로 방향을 잡았고 웹툰은 현재에도 외부통제가 아닌 자율규제로 방향을 잡아 창작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조화를 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쌓아온 문화지원행정의 성과가 마침내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트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웹툰은 21세기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콘텐트가 아니라, 출판에 뿌리를 두고 꾸준히 발전한 만화의 새로운 콘텐트다.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라도 문체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산업과 문화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문화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웹툰’이란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트로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을 마련한 우리의 만화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 위해 국정농단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를 계기로 문화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조직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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