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요승인가 개혁가인가 … 신돈, 그의 정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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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신돈과 그의 시대
김창현 지음, 푸른역사
343쪽, 1만3500원

사대부들은 그를 요망스러운 승려인 '요승'이라 비난했다. 여인들은 '신승'또는 문수보살의 화신인 '문수후신'이라 찬미했다. 백성과 노비들은 '성인이 오셨다'고 찬양했다. 고려말을 풍미했던 신돈. 그는 공민왕을 손 안에 넣고 개혁정책을 펴며 권력을 쥐락펴락했으나 결국 반대파에 밀려 숙청당한다. 당대와 마찬가지로 후세 평가도 상반된다.

사서 기록에 따라 "고려 말을 더욱 혼탁하게 만든 늙은 여우"라 하는 이도 있고, 개혁에 앞장섰던 선각자란 평도 있다. 최근에는 신돈 관련 역사소설과 드라마의 영향에 힘입어 후자의 평가가 우세해보인다. 신돈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의 '반역전'에 실린 내용이 거의 전부다. 그가 정계에 등장하기 이전은 베일에 싸여있다. 저자는 요즘 역사서술의 흐름대로 사료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보태 당시의 상황을 되살려 냈다.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중이 되어 시체를 처리하는 매골승 생활을 했던 신돈. 그는 어떻게 정계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바싹 마른 몸매에 눈빛을 빛내며 사철 누더기 옷으로 지내던 인물, 토지와 노비를 개혁한 사람이자,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 개혁가…. 거기에 술과 고기와 여성을 가까이하고 신비스러운 의식을 행한 밀교적 불교 쪽의 수행승 면모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배경은 고려와 원의 지속적인 갈등 관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 신돈과 공민왕이 함께 사랑한 여인, 공민왕과 최영과 신돈의 서로 물고 물리는 권력 게임이 두가지 중요한 축이 된다. 중국 대륙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고려와 나라의 운명을 지켜나가려했던 개혁가들의 인간적인 고뇌에도 공을 들였다. 저자는 고려사 전문가. 현재 성신여대 연구교수로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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