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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년 전 서방에 당한 치욕을 잊지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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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 마라라고에서 만찬을 했지요. 한데 이 만찬과 이후 열린 양국 정상회담 영상을 보면 군복을 입은 중국 장성 한 명이 눈에 띕니다. 어깨에 상장(대장) 계급장을 단 팡펑후이(房峰輝·66) 인민 해방군 총참모장(합참의장)입니다. 정상회담에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중국의 총참모장이 배석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죠.  

미중 정상회담 참석차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수행한 팡펑후이 총참모장(좌에서 두 번째)이 지난 6일(현지시간) 마라라고 리조트 만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쿠슈너 부부 옆에 앉아 있다. [사진 중국시보]

미중 정상회담 참석차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수행한 팡펑후이 총참모장(좌에서 두 번째)이 지난 6일(현지시간) 마라라고 리조트 만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쿠슈너 부부 옆에 앉아 있다. [사진 중국시보]

다음날 외신은 팡 참모장의 배석에 대해 여러 분석을 합니다. 미중 군사적 신뢰를 강조하기 위해서, 시진핑 주석이 군권까지 장악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미국의 북한 선제 타격에 반대 메시지라는 등등. 대만 중국시보는 “양국 참모본부 간 연락체계 구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대북 타격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양국 군대의 오판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지요. 

가장 설득력이 있는 분석입니다. 그만큼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에 꿀리지 않는다는 걸 팡 참모장의 존재로 대신하려 한 겁니다. 미군이 요즘 팡이 어떤 인물인지 집중 연구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중국군 ‘요주의 인물 1호’라는 얘기입니다. 팡은 중국 군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美·中 정상회담, 이례적 중국 총참모장 참석 #중국군 ‘요주의 인물 1호’, 팡펑후이 총참모장 #중국 ICBM 공개도 그가 주도, 무력 과시 목적 #시진핑의 중국군 개혁 중심에도 ‘중추’ 역할

팡은 2014년에 처음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에도 참모장 신분이었죠. 남 중국해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으로 아·태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는 미국 제2대 해군기지인 샌디에이고에 도착해 미국 제3함대를 둘러보고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과 연안전투함 ‘코로나도’에 승선했습니다. 미 해군 전력의 핵심인 항모에 올라 그는 중국 항모를 고민했다고 하죠. 아마 중국의 첫 항모인 랴오닝함의 ‘초라함(?)’에 이를 갈았을 겁니다.

미 항모를 둘러보는 팡펑후이 [사진 시루망]

미 항모를 둘러보는 팡펑후이 [사진 시루망]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발언이 있습니다. 2009년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선 건국 60주년의 열병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베이징 군구 사령관(중장)으로 이 열병식을 총지휘했지요. 열병식에는 인민 해방군 병력 8000여 명과 함께 중국 첨단 무기가 총출동했습니다. 

이때 공개된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41’은 사거리 1만 4000㎞로 핵탄두 6개를 탑재할 수 있는 신무기였습니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 2호’도 선을 보였는데 사거리가 8000㎞로 남중국해에서 미국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하지요. 한 마디로 전 세계를 향해 무력을 과시한 건데 이런 전략 무기 공개를 팡 참모장이 주도했다고 합니다.  

팡펑후이는 열병식에 앞서 신화통신과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기를 다집니다.

109년 전 서방세계 8개 국가가 중국을 침략해 천안문 광장에서 열병식을 했다. 아편 전쟁 후 반식민지의 반봉건 사회로 전락한 중화민족은 거대한 치욕을 받았다. 잊지 않겠다. 이제 우리는 다시는 외세의 유린을 용납하지 않을 충분한 역량을 지닌 군대를 양성했다.

이 결기에 중국인들은 환호했고 열병식이 끝나자 그는 상장으로 승진합니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 한국에도 6.25의 치욕, 일제의 치욕, 호란의 치욕 등 그 많은 국치를 잊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군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팡펑후이 총참모장 [사진 바이두]

팡펑후이 총참모장 [사진 바이두]

사실 그는 시진핑 주석이 아닌 후진타오 전 주석이 발탁한 인물입니다. 2007년 광저우 군구 참모장이었던 그를 후 주석이 수도 방어를 책임지는 베이징 군구 사령관으로 임명하지요. 당시 그의 나이가 56세였는데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의 젊은 수도 사령관이었습니다.  

그는 산시(陝西) 성 셴양(咸陽)시 빈(彬) 현 청관(城關) 진이라는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중국군이 워낙 보안을 중시한지라 그의 어릴 적 생활은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가 인민 해방군에 입대한 것은 17세인 1968년 2월이었습니다. 워낙 학구열이 높아 국방대학에서 전략 지휘를 전공하고 시안 정치학원에서 법학까지 공부했습니다. 전공은 문과 쪽인데 그는 정보전 전문가입니다.  지금도 자신이 직접 군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무선통신ㆍ전자 분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과학기술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는 "앞으로 중국군이 정보화 개혁을 하지 않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미군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시진핑 주석의 눈에 쏙 들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에게 군 상황을 보고하는 팡 총참모장(우측) [사진 해방군보]

시진핑 주석에게 군 상황을 보고하는 팡 총참모장(우측) [사진 해방군보]

시 주석이 2012년 말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을 꿰차면서 군 개혁을 선언했는데 이때 그와 같은 산시성 출신인 팡에 주목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군 부패의 몸통 격이었던 쉬차이허우(2015년 3월 사망)와 궈보슝(2016년 8월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형) 군사위 부주석 제거를 위해 의기투합하지요. 2015년 새해가 밝자 그는 중국군 총참모부 고위 장성들을 소집해 '주석 책임제 수호'를 외치며 시진핑에 대한 군내 '충성맹세'를 주도합니다. 그리고 쉬와 궈는물론 그의 잔당 세력 축출에 앞장 섭니다. 두 호랑이(?)가 제거되자 시 주석은 그에게 '싸우서 이기는 군대'로의 전면적인 개혁을 주문하지요. 현재 진행 중인 중국군 개혁 중심에 팡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후진타오가 발탁했지만 시진핑 시대에 그의 권력이 만개한 셈입니다.

군을 사열하는 팡 총참모장 [사진 국방부망]

군을 사열하는 팡 총참모장 [사진 국방부망]

팡펑후이는 화합에 능한 사령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정보화 시대에 과거와 같은 이념만을 내세워서 군을 지휘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군의 문제는 병사들 간의 관계나 지휘관과 병사들 간의 마찰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그가 21군 군단장을 할 때 “현재 병사 간의 사이에는 빈부 차이, 문화 차이, 배경 차이, 연령 차이, 사상 차이 등 다섯 가지 갈등 요소가 있다”며 “병사들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절박한 수준에 와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지요.    

그는 “신세대 사병들은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간의 화합이 중요하다”며 “지휘관은 새로운 시각,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병사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기층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사병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일선 장교들의 책임”이라고 단언합니다. 장교들은 사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며 우선 언행일치를 해서 성숙한 인격을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야전군 복장을 한 팡 총참모장 [사진 웨이신]

야전군 복장을 한 팡 총참모장 [사진 웨이신]

그에게는 두 개의 취미가 두 개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우표 수집과 무선통신입니다. 그것으로 일반적인 군인들과 달리 차분하며 정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열정을 가지고 했던 우표 수집은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찍이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무선통신은 군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가시간이 날 때마다 즐깁니다. 그는 잡지 ‘무선통신(無線電)'을 정기구독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컴퓨터에 관한 관심도 많습니다. 컴퓨터 관련 잡지를 구독하며 한가할 때 컴퓨터실에 들어가 군사지휘 방면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전형적인 컴퓨터광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딱 맞는 지휘관이죠.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앞에서 말한 그의 한 마디에 녹아있습니다. 다시는 청말의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결기 말입니다. 시진핑이 군 현대화를 외치면서 결기와 정보화로 무장된 그를 총참모장으로 모신(?) 이유일 겁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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