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 '뽑기'를 기억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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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입구역 근처 골목길에서 다시 만난 ‘뽑기’


1994년 봄, 서울 모 초등학교 6학년 학생 A군은 담임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 가방을 매고 쏜살같이 교문을 향해 달렸다. 교문 앞 골목 길가에서 A군은 발길을 멈췄다. 전날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도전에 임한 A군의 목표는 그날도 변함없이 ‘잉어’였다.

▲뽑기 최고의 상품 ‘잉어’

90년대 초중반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맛봤을 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뽑기’다. 뽑기란 ‘권총’, ‘잉어’, ‘꽃잎’, ‘비행기’ 등 다양한 모양의 노란색 사탕을 제비뽑기를 해서 고르는 것과 그 선택된 사탕을 통칭하는 말이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중학교 근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으나 점차 자취를 감춰서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2006년 1월, 25살이 된 A군은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근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술집들로 가득찬 길에서 유난히 A군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려 10여년만에 다시 만난 뽑기였다. 옛 추억을 다시 만난 반가운 마음에 A군은 다시 ‘잉어’에 도전했다.

먼저, 1부터 100까지 쓰여진 숫자판 위에 ‘권총’, ‘잉어’, ‘시계’ 등 사탕 모양이 적힌 막대기 네 개를 배열한다. 그 다음, 통 속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1에서 100까지의 숫자가 하나씩 적혀 있는 종이들 중에 하나를 꺼낸다. 숫자판 위에 배열돼 있는 막대기 네 개가 가린 숫자 중 하나와 뽑은 종이의 숫자가 일치하면 막대기 그 지점에 적혀있는 모양의 사탕을 얻게 된다.

▲ 뽑기 숫자판

▲ 사탕 모양을 결정지을 제비

2000원을 내고 종이를 세 번 뽑은 A군의 성적은 세 번 다 ‘꽝’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조그만 꽃잎 모양 사탕을 받게 돼있지만 주인할머니의 후한 인심 덕분에 A군은 큼직한 칼 모양의 사탕을 받았다.

▲ 주인할머니의 후한 인심 덕분에 얻은 ‘칼’

이곳 뽑기의 주 고객은 대학생들이라고 한다. 주인할머니는 “지나가다 보이니까 사먹지, 알고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도 A군처럼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옛 기억에 반가워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A군이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주인할머니는 “초저녁에 이런 거 찍으면 (장사) 잘 안되는데”라며 사진 찍기를 주저한다. 옛 추억을 사진으로 담아두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추억은 점차 잊혀지게 마련이다. “장사 안돼” 주인할머니의 체념 섞인듯한 이 한 마디는 뽑기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음을 A군으로 하여금 실감하게 해줬다.

추억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A군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억을 향한 아쉬움 때문이었다.[박경훈/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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