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번데기 껍질이 알려준 고대 장례문화

중앙일보

입력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안에서 뼛조각과 함께 발견된 파리 번데기 껍질. [사진 문화재청]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안에서 뼛조각과 함께 발견된 파리 번데기 껍질. [사진 문화재청]

삼국시대 백제인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바로 묻지 않고, 무덤 밖에서 일주일 정도 장례의식을 치렀을까. 이른바 '빈장'(殯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나왔다. 그것도 사람이 만든 게 아닌 파리 번데기 껍질이다. 곤충의 유해가 우리 고대 생활사를 규명하는 실마리로 사용되기는 처음이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서 발견돼 #시신 묻기 전 6일 정도 의식 치러 #법의곤충학적 국내 첫 분석 주목 #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전남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내부에서 국내 최초로 파리 번데기 껍질을 찾아냈다고 17일 발표했다. 법의곤충학적 분석연구를 통해 1500년 전에 빈장이라는 장례 절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파리 번데기 껍질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사진 문화재청]

파리 번데기 껍질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사진 문화재청]

 이번 파리 번데기 껍질은 정촌고분 1호 돌방(石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내부의 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무덤 주인의 발뒤꿈치 뼛조각과 함께 10여 개체가 나왔다. 그간 북유럽 바이킹 무덤이나 일본 하자이케 고분 등 외국에서도 몇 차례 발굴된 적이 있으나 국내에서 보고되기는 처음이다

 나주문화재연구소 측은 정촌고분 1호 돌방과 같은 조건(빛 차단, 평균 온도 16℃, 습도 90%)에서 파리의 알, 구더기, 번데기 등이 어떤 상태일 때 성충이 되는지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번데기 상태일 때만 성충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통상 알에서 번데기가 되기까지는 평균 6.5일이 걸렸다.

파리의 변태 과정. [이미지 문화재청]

파리의 변태 과정. [이미지 문화재청]

 실험은 고려대 법의학교실 신상언 연구강사가 맡았다. 신씨는 “파리 알이나 구더기가 고분과 같은 환경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동면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에 번데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이는 고분의 주인공이 일정 기간 장례 절차를 치른 뒤에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 측은 이번 파리 번데기 껍질은 ‘검정뺨금파리(Chrysomyia megacephala)’의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정촌고분 주변에서도 서식하고 있어 지난 1500여 년간 기후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5~11월(9월경에 가장 활발히 번식)에 활동하며, 무덤의 주인공도 이 기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 첨단기술과 전통기법을 접목해 복원한 1500년 전 백제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현대 첨단기술과 전통기법을 접목해 복원한 1500년 전 백제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파리 번데기 껍질이 발견된 금동신발은 백제의 중앙 권력층이 나주 주변 마한의 실력자에게 내린 하사품으로, 영산강 지역을 장악했던 지방 세력의 위세를 보여준다. 2014년 12월 출토됐으며 백제 시대 금동신발 가운데 최상품으로 평가된다. 이달 초 현대의 최첨단 기술로 유물을 복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구소 측은 앞으로 파리 번데기 껍질과 함께 출토된 고인골의 신체특성도 분석할 예정이다. 나주문화재연구소 전용호 연구관은 “이번 조사는 삼국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무덤 주인공의 사망 원인과 나이, 식습관, 신체 크기 등도 검토할 것”이라며 “고대 영산강유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도 복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