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도 반미 정권…프레발, 대통령 당선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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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카리브해의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쿠바의 동쪽에 위치한 아이티공화국. 오랜 독재와 잇따른 정정 불안에 신음하고 있고 투표용지 운반에 노새가 동원될 만큼 중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이 나라 아이티에 미국과 남미 국가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7일 실시된 대선에서 중남미의 대표적 반미주의자인 르네 프레발(63.사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프레발 후보는 8일 중간개표 결과 75%의 득표율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부촌 지역에서도 일방적 우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경쟁자인 레슬리 마니가(75) 전 대통령과 사업가 출신의 샤를 앙리 바케르(50) 후보는 득표율이 각각 10%와 3%에 그쳤다.

미국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는 프레발 후보가 2년 전 미국의 압력 속에 망명길에 오른 해방신학자 출신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의 '정치적 분신'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프레발 후보는 1970년대 중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아리스티드와 인연을 맺은 뒤 30년 넘게 정치행로를 함께했다. 90년 집권한 아리스티드가 1년 뒤 군사 쿠데타로 1차 망명할 때는 자신도 그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3년 뒤 다시 대통령에 복귀한 아리스티드가 연임 제한 규정에 묶이자 이번엔 그의 공식 후계자로 출마해 96~2001년 대통령을 지냈다. 조용한 말투에 내성적이고 소탈한 성격으로 특히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왔다.

미국은 그러잖아도 중남미의 좌파 바람에 골치를 앓고 있는데 바로 턱밑의 빈국마저 '반미'로 무장하지는 않을까 적잖이 우려하는 모습이다. 미 행정부 관리들이 아이티 대선에 대해 일절 논평을 삼가는 게 미국의 고민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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