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아줌마' "무서워서 더는 못하겠다고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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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영양 주사를 시술한 무자격의료업자인 ‘주사아줌마’ 박모(60)씨는 “대통령에게 주사를 놓는 게 무서워서 더는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만뒀다”고 진술했다.

이영선 전 행정관 공판 증인 출석 #박 전 대통령에 주사 처치 시인 #신원 확인 없이 청와대 드나들어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주사제를 놓을 때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경호원 없이 독대했다고도 밝혔다.

박씨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일) 심리로 열린 의료법 위반 방조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이영선(39) 전 행정관에 대한 첫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3월 23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3월 23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증언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자격을 갖고 있던 박씨는 2005년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교회에서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 최씨의 집으로 찾아가 몇 차례 주사를 놓아주며 친분을 쌓았다. 최씨의 집에는 주사제가 항상 준비돼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주사를 놓게 된 건 2012년 무렵부터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최씨를 따라간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에서 태반주사, 백옥주사, 마늘주사 등 영양제 주사를 박 전 대통령에게 처치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이영선 전 행정관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관저 안에서 주사를 놓았다. 처치를 마친 뒤에는 이 전 행정관의 차를 타고 청와대를 나왔다. 매번 이 전 행정관으로부터 봉투에 담긴 10만원을 비용으로 받았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으로 가면 이 전 행정관이 승합차로 마중을 나왔다. 관저로 가는 동안 검문검색은 없었다고 했다. 이 전 행정관이 안내한 관저 내실의 온돌방에는 주사기와 앰플 등 도구가 완비돼 있었다.


주사제는 차움의원 쇼핑백에 담겨 있었다. 대통령 자문의였던 김상만 차움의원 전 원장의 처방전과 시술 설명서가 같이 들어있었다. 박씨는 이 설명서에 따라 여러 주사제를 혼합해 박 전 대통령의 배와 팔에 주사를 놨다.


주사를 놓는 동안에는 박 전 대통령과 단둘이 방에 머물렀다. 박씨는 2009년에 무자격의료행위로 적발돼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를 드나들 때 신원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거나 검문검색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주사를 놓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이 컸다. 2013년에만 4차례 주사 처치를 한 박씨는 마지막 처치를 마친 뒤 이 전 행정관에게 “무서워서 못하겠으니 이제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박씨는 더이상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박씨는 재판장과 검사, 변호인 측 질문에 잔뜩 긴장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씨와 함께 재판에 나온 그의 남편은 법정을 나와 기자에게 “전에 처벌받은 뒤로는 한 번도 주사를 놓은 적이 없었는데 최순실 때문에...”라고 말했다. “후회되느냐”고 묻자 “지금은 무척 힘든 상태이니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하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박씨는 흰 마스크를 쓴 채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서둘러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날 재판은 이 전 행정관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선 진료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주사제를 놓은 고도일병원 전 간호사 문모(48)씨와 주사아줌마 박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 전 행정관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진술했다. 문씨는 “이 전 행정관에게 연락이 오면 으레 주사를 놔달라는 것으로 알고 주사제를 챙겨 청와대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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