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변신...선거 때 경제 관련 3개 입장 뒤집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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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거공약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일 뿐이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선거 캠페인 동안 강력하게 주장했던 경제 관련 3가지 공약을 ‘깨끗하게’ 뒤집어버렸다.

도널드 트럼프(얼굴)

도널드 트럼프(얼굴)

우선 트럼프는 오는 14일 예정된 재무부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지난주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 마련에 합의하면서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중국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안 하고 #재닛 옐런 Fed 의장에 "좋아한다" 언급 #수출입은행에 대해선 "미국도 필요하다"

미국의 무역촉진법은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초과^경상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초과^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GDP의 2% 초과 등 세 가지를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조달시장 접근이 제한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모니터링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외환ㆍ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실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엄청난 ‘겁박 도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 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재계 인사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 내 사우스 코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기업인들과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재계 인사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미무역 적자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을 가리켜 ‘환율 조작의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비난했었다. 대통령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결국 4월 재무부 보고서 작성을 코앞에 두고 말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이 몇 개월간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며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중국과 협력하려는 노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에 포함될 수 있었던 한국과 대만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한국과 대만이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지만 중국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가깝다. 이 때문에 중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빠지면 한국ㆍ대만도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중국ㆍ일본ㆍ독일ㆍ대만ㆍ스위스 등 6개국은 미국 재무부의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 감시대상국으로 분류됐는데, 이번 4월 보고서에서도 감시대상국에 그대로 남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가지 주시해야할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행동하는 만큼 대북제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오는 10월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다시 꺼내들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변신은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에 대한 신임이다. 트럼프는 이날 인터뷰에서 “나는 옐런을 좋아한다. 그녀를 존중한다”라고 말해, 옐런에 대해 달라진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연준이 정치적이라며 “옐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선되면 옐런을 교체하겠다”고까지 비난했던 대상이다. 월가에서는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옐런 의장을 재임명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출입은행과 관련한 입장도 완전히 바뀌었다.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는 수출입은행을 끼리끼리 도와주는 ‘정실 자본주의’라고 비판했던 트럼프가 이를 인정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수출입은행 덕분에 중소기업이 실제 수출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으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가 (기업의 수출을) 도와주는데, 우리만 안 도와주면 우리는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잃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바꾸지 않은 부분도 있다. 후보 시절 그는 “저금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이날 인터뷰에서도 “솔직히 털어놓고 말하는데, 나는 저금리 정책을 좋아한다”고 못박았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화폐가치를 낮추면 경쟁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연준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발언은 여전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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