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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면세점, 나 어떡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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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적어도 앞으로 1~2년간은 면세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칭하는 이들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면세업자들은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밀물처럼 몰려들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게 영향이 컸다. 산토끼 대신 집토끼(내국인) 잡기에 나서고, 해외 진출과 시장 다변화에 부랴부랴 나섰지만 당장의 충격은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유커 40% 줄고 매출도 40% 급감 #국내 1호 동화면세점 적자 전환 #청주 시티면세점은 임대료 못내 #신규 면세점 5곳 올해 개점 연기 #태국 관광객 유치, 해외 사업 진출 #승부수 던졌지만 성공 여부 불투명 #“허가제 → 신고등록제 검토 필요”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37만8503명(잠정치)이다. 지난해 같은 달(61만9913명)보다 40%가 줄어들었다. 중국이 3월 15일부로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한 것이 곧바로 반영된 것이다. 이 감소분은 그대로 면세사업의 매출 하락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면세점 매출에서 중국인 매출 비율은 64%(7조8000억원)에 달한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공항 면세점 중국인 매출은 455억원이다. 전년 동월 대비 27%가 감소했다. 협회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만 최대 5조원가량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전체 면세사업 규모(12조2757억원)의 40%가 쪼그라드는 셈이다.

시내 면세점의 충격은 더 크다. 지난해 전체 면세시장의 절반(6조원)을 차지한 시장 1위 롯데면세점은 여행제한 조치 이후 중국인 매출이 40%가 줄었다. 다행히 내국인 매출이 20% 정도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 감소분은 30% 선에서 방어했다. 다른 시내 면세점들도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 이상까지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업계 취합

자료:업계 취합

익명을 원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을 통해 팽창해온 업계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충격”이라면서 “지방이나 중소 면세점의 경우는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주공항에 입점한 시티면세점은 지난달 청주공항공사에 선불로 지급하는 4월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 이달부터는 직원 절반에게 급여 80%를 주는 유급 휴가를 시행했다.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은 지난해 적자 전환을 했다. 12일 공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동화면세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10% 늘어난 3549억원이었다. 하지만 영업적자는 124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117억원 적자를 기록, 3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 내내 계속된 촛불집회와 신규 면세점 등장으로 인한 경쟁 격화 등이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더 큰 문제는 오픈을 앞둔 신규 면세점이다. 현대면세점,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탑시티 등 서울 시내 면세점 3곳과 부산·알펜시아 면세점까지 총 5곳은 당초 연말에 문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건의에 따라 관세청은 지난 11일 개점 연기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10조3항)에 따르면 면세점 개점은 1회(30일)에 한해 미룰 수 있다. 추가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특허심사위를 열어 기간을 결정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한두 달 늦춰선 소용없다. 최소한 1년 이상 개점을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변길 관세청 대변인은 “면세시장 전반, 그리고 개점 예정업체 상황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면서 “절차에 따라 추가 연장을 원할 경우 특허심사위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정부에서도 면세업계 전반의 상황이 위태롭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면세점들은 살아남기 위해 내국인 잡기와 시장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5월 황금연휴를 맞아 14일부터 6월 1일까지 50여일에 걸쳐 선불카드, 여행용품, 해외 원정대 여행, 패밀리 페스티벌 입장권 등 대규모 경품을 내걸고 이벤트를 실시한다. 행사 규모만 80억원에 달한다. 유커 대신 내국인을 잡아보자는 차원이다.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는 “황금연휴 내국인 프로모션이 급격한 침체에 처한 국내 면세시장과 내수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은 태국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기로 했다. 최대 명절인 송끄란(Songkran·매년 4월 13일부터 15일)을 맞아 태국 씨티카드와 손잡고 태국 관광객을 유치키로 했다. 씨티카드는 태국 내 1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해외 면세사업을 통해 국내 부진을 만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5일 홍콩공항 면세점 화장품·향수 매장 운영권을 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면세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참에 면세제도 전반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5년에 한번씩 특허 심사를 받도록 하는 현행 허가제도 하에서는 사업 불확실성이 크고, 중국 유커 감소 같은 급작스러운 외부 이슈에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면서 “일정 요건을 지닌 사업자라면 면세사업을 할 수 있도록 신고 등록제로 바꾸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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