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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R&D 전략은 기업·연구소 합작품 … 정부는 예산 지원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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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주창한 것이지만, 그 모태(母胎)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중심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면서 전통 제조업 중심이던 독일은 국가 경쟁력과 혁신 역량의 위기에 대한 대책이 절실했다. 독일의 대표적 과학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와 프라운호퍼에서도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연구소가 신산업 개발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 ‘과학자들이 연구소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인더스트리 4.0’ 제조업 혁신 주도 #프라운호퍼·막스플랑크 연구소 등 #민간서 과제 정하고 예산도 배분

인더스트리 4.0은 그 고민의 결과였다. 제조업의 완전한 자동생산 체계 구축, 생산 과정의 최적화가 핵심이다. 이를 통해 창의적 기술 개발은 물론 제조업의 경쟁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독일 사회가 맞고 있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 역시 이런 전략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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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 위원들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의 내용보다 전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독일 정부가 주관해 만든 ‘10대 전진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제조업과 연구계의 합작품이다. 예산은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에서 댔지만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와 과학공학한림원에서 총괄 작업을 하고, 지멘스·BMW·도이체텔레콤 등 대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참여했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독일은 국가의 연구혁신 전략을 짜는 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전략을 도출해 제조업 혁명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독일은 연구소가 수행하는 개별 국가 R&D 프로젝트에도 기업의 참여가 활발하다. 기업 중심의 응용·개발 연구에 주력하는 프라운호퍼연구소가 대표적 사례다. 프라운호퍼의 연구 예산은 출연금 30%, 공공계약연구 35%, 기업계약연구 35%로 구성되며, 기업은 연구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R&D 과제 기획에서 기업의 연구인력을 형식적으로 참여하게 하고는 이를 산·학·연 공동연구라고 표현하는 한국 국가 R&D와는 대조적이다.

국가 R&D 과제를 선정하고 예산을 나누는 방식도 차이가 크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국가 R&D의 큰 전략을 짜고 나면, 막스플랑크 같은 연구소에 큰 덩어리의 예산을 던져준다. 개별 과제를 정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연구소의 몫이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한국연구재단·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같은 부처 산하 연구관리 전담 기관을 통해 6만 개에 가까운 개별 과제를 정하고 출연연·대학 등이 과제에 응모하게 한다. 국가 R&D와 기술이 필요한 기업 간의 연결고리가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준호 기자·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