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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트럼프, 조연 시진핑 …'한다면 한다' 변칙 각본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만남을 놓고 더글라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회장은 8일(현지시간) “시 주석은 방미 기간에 이런 일은 없었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본지에 촌평했다. 이런 일은 정상회담 기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국의 시리아 폭격을 뜻한다. 뉴욕타임스(NYT)도 “시리아 공격은 시 주석을 트럼프 대통령과 견줄만한 세계 지도자로 보여주려던 중국 측의 준비된 계획을 헝클어 놨다”며 “(공습이) 즉각 시 주석을 향하던 스포트라이트를 훔쳐갔다”고 보도했다.

  두 '스트롱맨'의 담판은 회담 첫날인 6일 저녁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며 공격수 트럼프만 부각되고 수비수 시진핑의 노련함은 알려지지 않은 채 끝났다는 게 미국 언론의 전반적 평가다. 정상회담을 연극에 비유하면 제목은 ‘한다면 한다’였고 주연ㆍ각본 트럼프에 조연 시진핑, 관람 김정은이었다.

  시리아 공격 논의는 회담을 이틀 앞둔 4일 비밀리에 시작됐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백악관에서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을 처음으로 보고받고 안보팀에 대응 방안을 지시한다. 이어 5일 오후 안보팀 회의 때 트럼프 대통령은 6일을 최종 결정을 내리는 D데이로 정한다. 6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다. 6일 회담장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휴양지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만찬에 앞선 오후 4시 외교안보팀 핵심 참모들과 최종 회의를 열어 폭격을 명령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진행 중이던 이날 저녁 7시 40분께 지중해의 미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이 발사됐다. 시 주석은 만찬이 끝날 때 이를 알았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대통령은 만찬 끝 무렵에 시 주석에게 직접 알렸다”며 “그땐 미사일이 (시리아 목표물에) 떨어지고 있었던 때인 오후 8시 40분께”라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회담을 앞둔 4일 “의전을 의식하는 중국이 (두 정상간) 정책 충돌보다 더 걱정했던 것은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시진핑을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중국 측의 숨은 우려를 전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때 악수를 거절하며 사실상 면박을 줬던 전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상회담 바깥의 이슈가 튀어나와 시 주석이 난처해지는 변칙 각본이 등장했다. 북한은 중국의 군사동맹이고 시리아는 중국과 우호 관계다. 북한을 향해서든 시리아를 향해서든 미국은 군사력은 쓰지 말라는게 중국의 외교 철칙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에 대해서도 중국의 양해 없이 행동할수 있다는 '웅변 효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군사 행동을 주저해 ‘햄릿’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이득도 챙겼다. 팔 부회장은 “시리아 공습의 메시지는 트럼프가 '망설이는 오바마'와는 다르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을 향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단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말로만 끝내지 않아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본지에 “시 주석은 놀랐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했던 말이 더욱 믿을 만한 얘기가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처럼 만에 여론의 호감까지 얻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에 까칠했던 CNN 방송에 7일 출연한 전 뉴스위크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는 “트럼프는 어젯밤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 충돌하고 있는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알아사드에게 대가를 치른다고 확실히 알리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단 의회와 협의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치거리인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설을 놓고도 근거가 없다고 행동으로 보여준게 됐다. 시리아 공습은 알아사드 정권을 뒤에서 받쳐주는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정면 대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 주석은 국제 사회를 대신해 화학무기를 쓴 불량 정권을 응징한 트럼프 대통령을 부각하는 조연에 그친 모양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시 주석은 어린이들이 죽었을 땐 그런 대응(공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밝혔다고 들었다”고 공개했다. 시 주석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공습을 지지했다는게 미국측 주장이다.

  시리아 공습은 안팎에 ‘결단의 트럼프’를 보여주는 효과를 거뒀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스콧 시먼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시리아 공습으로 중국과 김정은의 행동이 크게 바뀌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지에 밝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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