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호남 몰표 지역주의,이번엔 정말 없어질까?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지배해온 지역주의가 이번엔 정말 사라질까.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대선 때마다 되풀이됐던 영ㆍ호남의 지역의 몰표 경향이 최근 여론조사에선 약해지고 있다.

과거 대선때는 TK 호남 몰표 극심 #이번엔 지역 맹주 없이 분산 지지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허상" #선택지 많아져 지역은 후순위로

중앙일보가 4~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구ㆍ경북(TK)지역의 후보 지지율은 국민의당 안철수 39.3%,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23.2%, 자유한국당 홍준표 15.2% 순이었다. 반면 호남은 문 후보 46.0%, 안 후보 40.6%의 양강구도였다. 호남에서 문 후보가, TK에서 안 후보가 다소 앞섰지만, 압도적 우위는 아니었다.

 다른 여론조사도 비슷했다. 한국갤럽이 7일 발표한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TK는 안철수 38%, 문재인 15%, 유승민 15%, 홍준표 14% 순이었다. 호남은 문재인 52%, 안철수 38%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비록 여론조사 결과일 뿐이지만 이런 흐름은 역대 대선 결과와는 전혀 다르다. 87년 이후 TK지역은 보수계 후보에게 60%이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계속 몰아줬다. 2012년 대선에서도 이 지역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80.5%의 표를 얻었다.

쏠림현상은 호남에서 더 강력했다. 2007년 대선을 제외하고 진보진영 후보가 무려 90% 내외의 득표율을 보였다.(그래픽 참조) 그래서 “특정정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뽑아주는 ‘묻지 마 투표’”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지역주의 붕괴의 조짐은 3년 전부터 있긴 했다. 2014년 7ㆍ30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ㆍ곡성에서 당선됐다. 88년 이후 구 여권의 첫 전남 지역 국회의원이었다. 지난해 총선에선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당 김부겸 후보도 62.3%의 높은 득표율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거물’이던 김문수 후보에게 낙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런 결과들은 후보들의 개인적인 노력이나 유명세에 따른 ‘이변’쯤으로 여겨졌다. 대한민국 전체가 편을 갈라 격돌하는 양상의 대통령 선거와는 비교가 어려운 지역 선거이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가 급격히 완화되고 있는 원인으로는 먼저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보수의 몰락을 꼽을 수 있다.  보수계 후보들이 맥을 못추면서 TK 유권자들은 “문재인을 이길 만한 후보가 누구인가”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 반면 호남 유권자들은 ‘반문(反文)정서’와 ‘안철수 대안론’때문에 문 후보에게 지난 대선때와 같은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정치지형이 지역주의를 희석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 대선엔 보수(자유한국당)-중도보수(바른정당)-중도(국민의당)-중도진보(더불어민주당)-진보(정의당) 등 5개 정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과거 대선에 비해 정당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세분화됐다. 한국교통대 임동욱 교수는 “TK가 원래 보수고, 호남이 원래 진보였던 게 아니다. 양자택일의 구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성향을 강요당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중앙정부로부터 멀어져 자치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게 지역주의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 등이 대표적”이라며 “반면 대한민국은 언어ㆍ민족ㆍ인종 등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동질성이 강한 국가인데도 정치권이 지역주의를 조장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택지가 다양해지면 ‘지역’이란 변수는 후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주의는 잠복해 있을 뿐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문재인-안철수의 양강구도가 굳어지면 지역주의 투표 경향이 부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